'도 넘은 정당 현수막, 난립 막아라'…지자체들 팔 걷었다
기사 작성일 : 2023-03-09 08:00:02
인천 시내에 게시된 정당현수막


[인천시 제공]

(전국종합= "선거철도 아닌데 정당이나 정치인들 현수막이 왜 이렇게 많나요. 대부분 서로 헐뜯는 내용이라 보기도 싫고, 지나다니기 불편하고 위험하기도 해요."

요즘 거리에 내걸린 정당 현수막이 부쩍 증가해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유동 인구나 교통량이 많은 주요 길목마다 어김없이 정당 현수막이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정당을 상징하는 원색을 활용해 자극적인 문구를 넣은 이들 현수막은 시민들의 보행을 방해하고, 운전자의 시선을 강탈하기 일쑤다.

이처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정당 현수막이 급증한 것은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된 영향이다.

법 개정에 따라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서는 수량이나 규격, 게시 장소에 대한 제한 없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정당법에 따른 '통상적인 정당활동 범위'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현수막 난립이 점점 심각해져 '거리 공해'라는 지적까지 나오자, 자치단체들이 정비에 팔을 걷고 나섰다.

특히 선출직 신분으로 소속 정당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자치단체장들조차 문제 심각성에 공감하고 있다.

◇ "제한 없는 현수막, 관리 근거 둬야"…시행령 개정 건의 잇따라

김두겸 울산시장과 5명의 울산 기초단체장은 이달 3일 간담회를 열어, 옥외광고물법 관련 정당 현수막 세부 기준을 마련하는 내용으로 시행령을 개정해 줄 것을 행정안전부에 건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현행법상 정당 현수막 난립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자치단체가 대처할 근거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김 시장은 9일 "정당 현수막 난립으로 운전자들과 등하굣길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다"라면서 "정당활동 보장 이상으로 국민 안전과 쾌적한 도시환경을 누릴 권리 또한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움직임은 전국 곳곳에서 감지된다.

경남 창원시도 지난달 행안부와 경남도에 관련 법 시행령 개정을 건의했다.

창원시는 강풍 등 천재지변에 따른 사고 우려가 있는 데다, 현수막이 가게를 가린다는 상인들 민원이 이어져 건의에 나섰다고 설명했다.

대전시도 지난달 시행령 개정을 정부에 건의했고, 충북시장군수협의회는 '정당 현수막의 설치·관리 기준에 관한 위임 근거를 신설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안을 채택해 행안부에 전달했다.

사람 목 높이에 설치된 정당 현수막


[인천시 연수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가이드라인 마련, TF 가동, 지정게시대 운영…자구책 시도

자치단체 자체적으로 대책을 마련하려는 시도도 있다.

서울시는 최근 오세훈 시장 주재로 개최한 '시·자치구 구청장 회의'에서 정당 현수막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각 정당에 지역별 지정 게시대 이용 등을 안내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는 정당활동 범위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하기로 했다.

인천시는 10개 구·군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가동에 들어갔다.

TF는 보행자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현수막 설치 제도를 구체적으로 정비하고, 옥외광고물 관련 법령 개정 건의와 현수막 게시시설 확충 등의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이들 조치를 뒷받침하는 현수막 관련 조례를 개정할 예정이다.

세종시는 '정치 현수막 우선 지정게시대'를 운영해 관심을 끈다.

시는 2천만원을 들여 지난달 어진동 성금교차로와 조치원읍 번암사거리에 게시대를 설치했다.

이 게시대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주요 정책을 홍보하거나 명절 인사를 할 때 사용할 수 있고, 상대 당을 비방하는 내용의 현수막은 걸 수 없다.

◇ "우리부터 걸지 말자"…지방의회·행정기관 솔선수범

현수막 난립 폐해에 공감하면서, 지방의회나 행정기관이 솔선수범해 현수막 설치를 자제하려는 노력도 있다.

전북 전주시의회는 지난 1월 시의원들에게 명절 인사용 현수막을 내걸지 않도록 권고했다.

이는 지방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현수막 게시를 제한하는 옥외광고물법 개정안에 저촉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무분별한 현수막 설치가 도시 미관을 해치고 쓰레기 발생량을 늘리게 된다는 점도 고려됐다.

경기 광명시는 불필요한 현수막 설치를 줄이고자 '행정용 현수막 총량제'를 도입해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시청, 동 행정복지센터, 소방서, 경찰서 등 관내 행정기관에서 게시하는 현수막이 총량제 대상이다.

이들 기관은 보통 지정된 게시대에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지만, 간혹 도로변 가로수 등에 불법 설치하거나 지나치게 많이 설치하는 사례가 발생해 총량제가 도입됐다.

총량제 시행으로 이들 기관이 건당 게시할 수 있는 현수막 수량은 10개 이내로 제한된다.

광명시 현수막 단속반은 10개를 초과하는 현수막을 즉시 철거하고, 추후 게시 수량을 제한하는 페널티를 부과한다.

(신민재 김동철 이덕기 박재천 김준범 김재홍 김선경 최종호 이상학 허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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