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극우는 안돼" vs "기회 한번 줘야"…佛 투표소 민심
기사 작성일 : 2024-06-30 20:00:57

프랑스 총선 1차 투표


(파리 AFP= 3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근교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하는 모습. 2024.06.30.

(파리=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일인 30일(현지시간) 오전 파리 시내 8구청사에 마련된 투표소에 아침부터 한 표를 행사하려는 유권자의 발길이 이어졌다.

휴일이라 그런지 가족 전체가 투표소를 찾기도 했고 일찌감치 투표를 마치고 여행을 하려는 지 캐리어나 짐가방을 챙겨 투표장을 찾은 이들도 있었다.

투표소에서 직접 들어본 파리의 민심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남편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나온 줄리(44) 씨는 극우 국민연합(RN)이 다수당이 되는 걸 막기 위해 일찍 투표소에 나왔다고 했다.

그는 "극우는 파시스트로, 그들은 여성 인권이나 이민, 가난한 자들을 옹호하지 않는다"며 "그들이 권력을 잡는 건 재앙"이라고 말했다.

까미유(45) 씨는 현 집권 여당에 표를 던졌다.

그는 "여당이 이길 것 같진 않지만 의회 내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투표했다"며 "좌파도 문제가 많지만 극우가 다수당이 되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우려했다.

RN 후보를 찍었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이전엔 RN의 극우 이미지 탓에 '샤이 지지층'이 많았다면 요즘은 공개 지지에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올랑(70) 씨는 "차악으로 RN을 선택했다"며 "좌파가 정권을 잡는다면 나라가 파탄 날 것이고 마크롱은 7년 동안 나라를 운영했는데 한 게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번 선거 결과로 RN이 의회 내 다수당이 될 것이라고 믿는 그는 "RN은 한 번도 나라를 운영해 본 적이 없으니 이번에 기회를 한 번 줘봐야 한다"며 "그들이 나라를 잘 이끌어가길 바란다"고 했다.

한 80대 유권자는 "화가 나서 투표하러 왔다.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이 너무 많다"며 현 정부에 불만을 나타냈다.


소중한 한 표 행사


(파리= 송진원 특파원 = 30일(현지시간) 오전 프랑스 파리 8구청사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고 있는 모습. 2024.06.30.

이번 선거는 RN의 극우 블록과 좌파 진영 간 연합인 신민중전선(NFP), 여당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한 범여권 앙상블 간 3파전 구도다.

극우 블록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어 처음으로 의회 다수당을 눈앞에 뒀다.

RN의 집권을 막기 위해 NFP 지지자들은 극우 반대 집회를 열며 투표 참여 캠페인을 벌이는 등 양측의 선거전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그 틈바구니에서 앙상블은 양극단에 반대하는 중도 블록을 짜보려고 했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 탓에 지지율을 끌어올리진 못했다.

진영 간 신경전이 팽팽한 만큼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말하는 것을 꺼리는 유권자도 많았다.

50대로 추정되는 여성은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이에 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인터뷰를 거부했다.

또 다른 중년 남성 역시 "시간이 없다"며 황급히 현장을 피했다.

입도 뻥긋하지 않고 고개만 좌우로 흔들며 거부 반응을 보이는 유권자도 있었다.

어느 정당이 다수당이 되더라도 큰 틀에서 프랑스 정치가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는 '냉소파'도 있었다.

고웬(52) 씨는 "아무리 극단적인 정당이라도 일단 집권하면 국내외 정치적인 이유나 예산, 사회적 이유 등 여러 요인으로 운신의 폭이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며 "그래서 지난 30년 동안 정책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소야대가 돼 대통령과 총리의 정당이 다르더라도 길어야 3년(대통령 잔여임기)이라며 "프랑스는 그렇게 쉽게 변하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날 투표는 파리를 비롯한 도시권에선 오후 8시까지, 지방 소규모 자치단체에선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1차 투표에서 당선자가 나오지 않으면 다음달 7일 결선에서 결정된다.

극우 RN이 약진하고 마크롱 대통령의 전격적 조기총선 선언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투표율은 2022년 총선 1차 투표율(47.5%)을 훨씬 뛰어넘는 60%대 중후반이 될 것이란 예측이 대체적이다.

자신이 직접 투표장에 가지 못해 대리 투표를 맡긴 유권자도 28일까지 260만여명에 달했다.

대리 투표하러 왔다는 조세핀(38)씨는 "이 투표소에선 대리 투표를 했고, 나는 근처 다른 투표소에 가서 내 투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까미유씨 역시 이날 투표를 위임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나쁜 의도를 갖지 않는 이상, 대신 투표하는 사람은 신뢰에 기반해 (위임자가 원하는 후보에) 투표한다"고 말했다.


투표하는 유권자들


(파리= 송진원 특파원 = 30일(현지시간) 오전 프랑스 파리 8구청사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시민들이 투표하려고 줄 선 모습. 가족 단위 유권자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2024.06.3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