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화재 원인은 '총체적 부실'…골든타임 37초 놓쳤다(종합2보)
기사 작성일 : 2024-08-23 15:00:30

아리셀 화재 수사 결과 발표하는 강운경 지청장


(화성= 홍기원 기자 = 강운경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장이 2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화성서부경찰서에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4.8.23

(화성= 고미혜 권준우 김솔 기자 = 공장 화재로 23명이 숨진 경기 화성시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이 2021년 최초 군에 납품할 당시부터 줄곧 검사용 시료를 바꿔치기해 품질검사를 통과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와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은 23일 오전 10시 30분 화성서부경찰서에서 수사 결과 합동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아울러 박순관 아리셀 대표와 아들인 박중언 총괄본부장, 인력 공급업체인 한신다이아 경영자, 아리셀 안전보건관리 담당자 등 4명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적용,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 대표에게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도 적용됐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노동당국이 법 위반으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한 사례는 몇 차례 있지만 발부된 적은 아직 없다고 노동부는 밝혔다. 박 대표에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법 시행 후 첫 사례가 된다.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 결과는


(화성= 홍기원 기자 = 김종민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 사고 수사본부장이 23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화성서부경찰서에서 2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2024.8.23

경찰 조사결과 아리셀은 2021년 일차전지 군납을 시작할 당시부터 품질검사용 전지를 별도로 제작한 뒤 시료와 바꿔치기하는 수법 등으로 데이터를 조작해 국방기술품질원을 속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방법으로 아리셀은 2021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47억원 상당의 전지를 군에 납품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던 아리셀은 올해 4월분 납품을 위한 품질검사에서 처음으로 국방규격 미달 판정을 받았다.

국방기술품질원이 무작위로 선정한 시료를 바꿔치기하는 과정에서, 선정된 시료에 적힌 서명을 위조한 사실이 탄로 난 것이다.

아리셀은 올해도 방위사업청과 34억원 상당의 리튬전지 납품계약을 맺고 지난 2월 말 8만3천여개를 납품한 데 이어 4월 말에도 8만3천여개의 전지를 납품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규격 미달 판정으로 4월 납품분을 재생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6월분(6만9천여개) 납기일도 다가오자 아리셀은 지난 5월 10일께 '하루 5천개 생산'이라는 목표를 정하고 제조공정을 무리하게 가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루 5천개는 아리셀 공장의 일평균 생산량의 2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아리셀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한신다이아(메이셀의 전신)로부터 근로자 53명을 신규 공급받았다. 이어 숙련되지 않은 이들을 충분한 교육도 없이 주요 제조공정에 투입했다.


슬픔에 잠긴 아리셀 화재 유가족들


[촬영 홍기원]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 업무는 파견법에 규정된 32개 파견근로 허용 업종에 포함되지 않아 불법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3∼4월 2.2%였던 평균 불량률은 5월 3.3%, 6월 6.5%로 치솟았고 케이스 찌그러짐이나 전지 내 구멍 등 기존에 없던 유형의 불량도 추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도 아리셀은 문제 해결 없이 케이스를 망치로 쳐 억지로 결합하거나 구멍 난 케이스를 재용접하는 등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생산을 이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숙련된 기술이 요구되는 메쉬(리튬 배터리 니켈 소재의 얇은 망) 절단 공정에도 일용직 근로자들이 대거 투입돼 직접 작두를 이용, 절단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등을 종합할 때 숙련되지 않은 근로자들이 수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절단면에 뾰족한 형태의 잉여 부분이 발생했고, 이것이 외부에서 들어온 금속 이물질과 함께 폭발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5월 16일에는 미세 단락으로 인해 전지에 발열이 생기는 것을 처음 인지한 뒤 정상 전지와 분리하는 작업을 거쳤지만, 6월 8일 이후에는 발열전지 선별 작업조차 중단하고 분리 보관하던 발열전지도 납품 대상에 다시 포함한 것으로 조사됐다.

화재 사고 이틀 전인 6월 22일에는 전해액 주입을 마친 발열전지 1개가 폭발해 화재가 발생했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생산라인을 계속 가동했다.

해당 시점에 전해액이 주입됐던 전지들은 그대로 이틀 뒤 오전 9시 19분 사고 장소인 3동 2층으로 옮겨졌고, 1시간 여 뒤 이번 참사가 발생했다.

비상구 설치 등 대피경로 확보에도 총체적 부실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이 난 공장 3동 2층에선 3개의 출입문을 통과해야 비상구에 도착할 수 있는데, 그 중 일부는 피난 방향과 반대로 열리도록 설치됐다. 항상 열릴 수 있어야 하는 문에 보안장치가 설치되기도 했다.


아리셀 화재 현장 합동 감식


[ 자료사진]

또 근로자의 채용과 작업 내용 변경 때마다 진행돼야 할 사고 대처요령에 관한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

근로자들은 배터리 폭발 시 즉시 대피해야 한다는 안전지침을 알지 못한 탓에 최초 폭발이 발생한 오전 10시 30분 3초부터 출입문을 통해 근로자가 마지막으로 대피한 30분 40초까지의 골든타임 '37초'를 놓쳤다.

결국 23명의 희생자가 출입문을 불과 20여m를 남겨둔 지점에서 모두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화재 직후부터 수사본부를 편성, 아리셀 등 3개 업체 관련 13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4차례에 걸쳐 화재 현장에 대한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또 피의자 및 참고인 103명을 131회에 걸쳐 조사해 이 중 18명을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비숙련공을 대거 투입하고, 이상 제품을 발견하고도 검수 없이 정상 제품 취급하는 등 공정상 부실이 다수 발견됐다"며 "이를 통해 분리막 손상 또는 전지 내·외부 단락이 발생해 폭발 및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수원지검은 이날 박 대표 등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경찰과 노동청이 피의자들에 대해 신청한 구속영장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범죄 혐의와 구속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6월 24일 오전 10시 30분께 아리셀 공장 3동 2층에서 불이 나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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