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이제그만] ② 마음의 상처 치유, 시간 아닌 시설이 절실
기사 작성일 : 2024-09-17 08:01:11

(춘천·강릉= 박영서 강태현 류호준 기자 = "학대 피해 아동 시설의 부족과 인원 제한으로 사안이 급박한 경우 다른 지역 시설을 알아봐야 하고, 아이들을 위한 장기보호 시설 확보가 쉽지 않아요."

학대 피해 아동의 경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한 심리 상담이 필수적이지만, 인프라가 부족해 꾸준한 치료로 이어지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학대 10건 중 9건은 가정에서 발생하는 현실 속에서 즉각 분리 조치에 반발하는 부모들도 적지 않은데, 이를 뿌리치고 아이들을 부모와 떼어놓더라도 안정적으로 장기간 돌봐줄 수 있는 시설이 없어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이에게 상처 되는 말'


[ 자료사진]

◇ 학대 아동 분리 시도에 "왜 가정 해체하느냐" 반발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은 재학대 우려가 커 조사가 필요한 경우 지자체의 보호조치 결정이 있을 때까지 피해 아동을 일시보호시설에 입소시켜 학대 행위자와 즉각 분리할 수 있다.

보호기간이 72시간에 불과했던 기존 응급조치의 한계를 보완해 현장에서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2021년 3월 아동복지법 개정을 통해 마련한 제도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2023년 아동학대 연차 보고서'를 보면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 2만5천739건 중 피해 아동을 가정으로부터 분리 보호한 사례는 9.3%(2천393건)이다. 이는 즉각 분리 조치 1천431건도 포함된 수치다.

즉각 분리된 피해 아동은 보호조치 결정에 따라 원가정으로 복귀(보호 체계 유지)하거나 위탁가정 또는 다른 학대피해아동쉼터에 입소(보호 체계 변경)하게 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학대 행위자의 반발로 인해 피해 아동을 떼어놓는 것부터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즉각 분리를 시도하면 '우리 집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왜 우리 가정을 해체하느냐'며 강하게 부정하는 사례가 잦다"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 관계자도 "아동학대 행위자들과 전담 공무원 간 '법과 규칙'에 관한 생각 차이가 너무나도 크고, 경찰이 아닌 지자체에서 개입하는 데 대해 이해가 부족하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반감이 크다"고 토로했다.

강미정 세이브더칠드런 아동권리정책팀장은 "현장에서 들은 바로는 전반적으로 즉각 분리 제도와 관련한 학대 행위자들의 민원이 많다"며 "공무원들의 분리 시도 주저로 이어져 학대피해아동쉼터에 아이들이 없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당연히 분리되어야 할 사건인데 분리가 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며 "제때 분리한 뒤 학대 행위자가 변하도록 충분히 상담하고, 가정이 안전해지면 아이를 돌려보내야 재학대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에게 상처 되는 말'


[ 자료사진]

◇ 보호시설 찾아 삼만리…심리 치료 인프라도 부족

문제는 아이들을 떼어놓더라도 학대피해아동쉼터와 장기보호시설이 넉넉지 않다는 점이다.

보호 체계 변경으로 분리된 아동들이 머무르는 학대피해아동쉼터 등 시설은 대게 6개월∼1년으로 머무를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 있다.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숙식뿐 아니라 생활지원과 상담, 치료, 교육 등을 제공하는 곳이지만 강원도의 경우 춘천 2곳, 동해·속초·삼척 각 1곳 등 총 5곳뿐이다.

원주에도 학대피해아동쉼터가 있었으나 지자체 등에서 예산 지원이 중단되면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2022년 7월 폐업하고 말았다.

보통 5∼7명의 소그룹으로 운영되고, 보호조치 전 잠시 며칠간 머무르는 일시보호시설과 달리 평균 3∼6개월가량 머무르기 때문에 항상 정원이 꽉 차 있는 경우가 있어 이곳저곳으로 전화를 돌려 빈자리를 찾는 일이 다반사다.

아이들로서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다니던 교육시설과 주소지를 떠나 낯선 곳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부담에 직면한다.

한 학대피해아동쉼터 종사자는 "정신질환이 있는 아이의 경우 다른 아이들이나 종사자들과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간혹 폭력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중증 장애아동들은 장애 시설로 가지만, 경계선 지능 아동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가 있는 아동들은 일반 아이들과 섞여서 지낸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나아가 장기적 보호가 필요해 보육원과 같은 아동양육시설에 입소하더라도 문제가 남는다.

학대피해아동쉼터와 달리 장기보호시설은 가정 내 돌봄이 어려운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므로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전담 시설은 아니라는 점에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지속하여 사례 관리에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안정적으로 치료가 지속되기 쉽지 않은 실정이다.

장기보호시설의 경우 정원이 다 찼다거나 피해 아동들이 단체생활을 하면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편견 탓에 받기를 꺼리는 곳도 있다.

게다가 시설에 따라 심리상담사가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다. 심리상담사가 없으면 소아정신과 진료를 볼 수 있는 의료기관을 찾아야 하지만, 도내에는 소아정신과 의사가 없는 곳이 태반이다.

정유리 강원도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는 "예산이 있어도 치료받을 수 없는 인프라가 부재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도서·산간일수록 공공의료 성격을 가진 치료센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 "NO!" 인형극으로 설명하는 아동학대 대처법


[ 자료사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