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제한' 고민한 '해직 기자'…이흥재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종합)
기사 작성일 : 2024-10-11 14:00:32


[유족 제공]

이충원 기자 = '해고의 자유는 기아(飢餓·배고픔)의 자유로 귀착될 뿐'이라며 해고를 제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노동법·사회보장법 전문가 이흥재(李興在)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가 8일 오후 6시28분께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1일 전했다. 향년 78세.

1946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8년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중앙일보 기자로 들어갔다가 1980년 해직자 33명에 포함됐다. 당시 중앙일보 기자들은 5월19일 비상총회를 열고 "광주항쟁 왜곡 보도를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5월21일 경찰 출입 기자 5명이 광주에 잠입했고, 제작 거부를 결의하기도 했다. 고인은 해고 후 1984년 서울대 법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1988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1988년 한국방송통신대를 거쳐 1989∼2012년 서울대 법대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노동법·사회보장법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2000∼2002년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2002∼2003년 한국노동법학회장을 지냈다.

고인은 노동법을 연구하고 사회보장법을 국내에 소개한 선구자였다. '노동은 단지 임금을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의 인격을 실현하는 수단'이라는 게 해직 기자 출신인 고인의 소신이었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012년 이흥재 교수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에 쓴 글 '노동법의 길-이흥재 교수의 노동법학을 회고하며'를 보면 고인은 1988년 박사학위 논문 '해고제한에 관한 연구'에서 "해고의 자유는 '기아의 자유'로 귀착될 뿐"이라고 썼고, '해고 부자유의 원칙'을 사회법(사회보장법) 원리의 출발로 봤다.

당시 노동법 학계가 해고를 개별적 근로관계의 차원에서 접근하던 것과 달리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차원에서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고, 프랑스법 중 '노동향유권(노동을 즐길 권리)' 개념을 소개했다. "근로자 측의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는 해고 절차는 노동향유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그 효력은 무효"가 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해고예고 기간, 해고예정자의 방어권, 노조 등 근로자 측의 참여권 등을 준수하지 않거나 보장하지 않은 해고는 절차적 정의에 위반되어 무효라고 봤다. 노동법원의 설립, 실효성 있는 구제 수단의 확보, 고용소송법 확립을 주장했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 노동법의 기초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휴고 진쯔하이머(1875∼1945)와 한국 노동법 제정 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전진한(1901∼1972) 전 사회부 장관을 연구했다.

국내 사회보장법 연구가 일천한 상태에서 연구의 기초를 닦았다. 고인의 제자인 김복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2년 이 교수 정년퇴임 기념 논문집에 쓴 글 '자유를 향한 공생의 염원'에서 "선생님이 본격적으로 사회보장법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 한국의 사회보장법학은 사실상 황무지에 가까웠다"고 적었다.

국내 최초로 서울대 법대에 '사회보장법 전공' 교수로 임용됐다. '사회보장법'(1988), '사회보장 판례 연구'(2010), '사회보장법 입법사 연구'(2022) 같은 책을 펴냈고, 2008년 서울대 사회보장법연구회, 2011년 한국사회보장법학회 창립을 주도했다. 부친의 뒤를 이어 사회보장법 연구로 영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딸 이지원씨는 "(고인이 대학원 다닐 때인) 1982년에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야'라고 물어봤더니 '근로기준법과 사회보장법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학부 강의 때 진폐증에 걸린 한 노동자가 법학을 공부하는 아들에게 했다는 "법은 큰 강이다. 그 강은 없는 자에게도 흘러야 한다"는 말을 즐겨 인용했고, 음주와 등산을 즐겼다. 강 교수는 '노동법의 길'에서 "내게 교수님은 지리산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없는 산"이라고 썼고, 한인섭 서울대 교수도 페이스북에 "후배들에게 이 교수님은 무엇보다 등산으로 기억됩니다"라고 적었다.

김복기 교수는 에 보낸 이메일에서 "선생님은 '펜이 부러지긴 했지만 꺾이지는 않은' 청년 기자의 열정을 간직한 채 관악에서, 북한산에서, 또 지리산에서 '혼(魂)의 씨앗'을 뿌리셨다"며 "곡차에 담아 나눠주신 이야기만 차곡차곡 쌓아 두었어도 동산 하나는 마련했을 텐데, 우리는 아직 언덕을 찾고 있다"고 애도했다.

유족은 부인 박순이씨와 사이에 1남1녀(이지원·이한종)와 며느리 박경은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13일 오전 9시. 오랜 암 투병 탓에 고인의 평소 희망인 '시신 기증'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하동 선영의 나무 곁에 안식처를 찾을 예정이다. ☎ 02-207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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