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도 "고통스러운 과거"라는 노예무역…영국, 배상할까
기사 작성일 : 2024-10-28 19:00:57

연설하는 찰스 3세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25일 사모아 아피아에서 열린 영연방정상회의(CHOGM)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AF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자카르타= 박의래 특파원 = 아프리카나 카리브해에 있는 영연방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영국 정부가 제국주의 영국 왕실의 '흑역사'로 꼽히는 노예무역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찰스 3세 영국 국왕은 "고통스러운 과거"라고 언급하면서도 공식 사과는 피하고 있으며 영국 정부도 배상에 대해 논의는 할 수 있지만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26일 태평양 섬나라 사모아에서 열린 영연방정상회의(CHOGM)에서 영연방 회원국 56개 국가 정상은 공동 성명을 통해 노예무역에 대해 "공평에 기반한 공동의 미래를 만들기 위해 의미 있고 진실하며 존중하는 대화를 할 때가 됐다는 데 동의했다"며 "배상 정의에 대한 논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이 회의에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참석한 만큼 영국 정부도 공식 찬성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예무역이란 일반적으로 15∼19세기 말 아프리카인들이 대거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노예로 팔려 간 것을 말한다.

영국과 프랑스, 포르투갈 등 과거 식민지를 운영했던 나라들은 최소 1천250만명을 노예로 만들어 아메리카 대륙으로 옮겼는데 이중 영국은 약 320만명을 노예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은 영국 등을 상대로 아프리카인들을 노예화하고 인종차별 정책과 집단학살, 식민주의 등을 펼친 것에 배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예제도 유산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의 인종 차별과 불평등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배상 문제를 다룰 국제 재판소 창설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한다.

이에 영국 당국은 끔찍한 과거를 인정하면서도 배상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역사적 잘못에 대해 현 정부가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찰스 3세도 이번 CHOGM 연설에서 "우리 과거의 가장 고통스러운(painful) 측면이 얼마나 계속해서 공명하고 있는지 영연방 전역의 사람들로부터 들어 이해하고 있다"며 "장래에 옳은 선택을 내리도록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라면서도 과거사 문제에 직접적으로 사과하지는 않았다.

이번 회의를 앞두고 스타머 총리는 노예무역 배상 문제가 회의 의제로 올라오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카리브해 국가를 포함해 다른 여러 회원국이 노예무역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강력히 압박해 결국 성명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배상 문제를 공식 논의하기로 하면서 배상 규모나 방법에도 관심이 모인다.

지난해 서인도제도 대학과 미국 국제법 학회는 보고서를 통해 영국은 카리브해 14개 국가에 24조 달러(약 3경3천235조원)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7배에 달하는 규모다.

현실적으로 이런 대규모 배상은 힘들겠지만, BBC는 직접적인 배상금 지급 외에도 채무 탕감이나 공식 사과, 교육 프로그램, 박물관 건립, 경제적 지원, 공중보건 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배상이 가능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다만 실제 배상 합의가 이뤄지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스타머 총리는 공동성명 합의 후 기자회견에서 "성명은 논의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일 뿐"이라며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이 회의에서 '돈'에 관해선 어떤 논의도 없었으며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매우 분명하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공동성명에서 노예무역 배상에 관한 내용은 "20개 문단 중 한 문단에 불과하다"며 성명의 핵심이 아니라고 절하했다.

킹슬리 애버트 런던대 영연방연구소장은 AFP에 "(노예무역에 관한) 배상 정의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합의한 것은 대화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라면서도 "이제 정말 힘든 일이 시작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외신들은 내년 3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영국-카리브해 포럼'과 2년 뒤 열리는 CHOGM에서 이 문제가 다시 논의되는 등 앞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노예무역 배상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관측했다.


노예제도 배상 시위


2022년 자메이카에서 한 시위자가 영국의 노예제도 배상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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