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헌재, '지역차별 조장' 차등자치법 조건부 합헌 결정
기사 작성일 : 2024-11-15 21:00:58

이탈리아 헌법재판소


[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로마=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의 고질적인 남북 격차를 더욱 심화할 것으로 우려되는 차등 자치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14일(현지시간) 조건부 합헌 결정을 내렸다.

안사(ANSA) 통신에 따르면 헌재는 이날 차등 자치법 자체는 합헌이지만 지역 간 평등 원칙과 국가 통합성을 보장하지 못할 경우에는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의회의 몫이라며 법의 구체적인 시행 방식과 내용을 철저히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매체들은 헌재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만큼 정부와 의회가 법 시행을 놓고 추가적인 논의와 조정을 거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정부는 헌재의 결정이 법률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일단 법 시행을 잠정 보류할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이탈리아의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헌재에 차등 자치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소송을 제기했다.

이 법은 지방정부가 원하면 더 많은 자치권을 부여하는 법안이다. 특정 지역의 요구에 따라 자치권의 범위를 차등적으로 확대하려는 취지로 설계된 법안이다.

이를 통해 지방정부는 재정 통제권이 강화되고 보건, 교육과 같은 핵심 공공 서비스에 대해 더 많은 자율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부유한 북부 지역은 자신들이 힘들게 번 돈이 '게으른 남부'의 복지 예산으로 과도하게 쓰인다며 세수를 중앙정부에 덜 이전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반면 남부를 포함한 경제적으로 덜 발달한 지역은 이 법안이 지역 간 경제적 격차를 심화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특히 이러한 지역들은 중앙정부의 국고 보조금이 줄어들어 공공 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야당 또한 이 법안이 남북 간 분열을 조장하고 국민을 '1등 시민'과 '2등 시민'으로 나눌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 법안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지난 6월 여야 의원들이 법안 심의 과정에서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차등 자치법이 시행되면 중앙정부의 세수가 줄어들어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이탈리아 정부의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탈리아는 오랜 기간 분열됐다가 1861년 하나의 국가로 통일됐다. 이런 배경 탓에 지역 간 문화·언어적 이질성이 강하다.

경제력 격차에 따른 지역감정도 극심하다.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북부는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부유한 지역이며 생활 수준도 높지만 남부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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