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김다혜 기자 =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다 삶을 마감한 30대 싱글맘 사례처럼 불법 채권 추심으로 인한 피해가 끊이지 않아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채권추심법은 채무자나 관계인을 폭행·협박·감금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채무자의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반복적인 전화·문자로 공포심을 유발해 사생활·업무의 평온을 심하게 해친 경우 등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돼 있다.
하지만 징역형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는 극히 드문 실정이다.
24일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나온 채권추심법 위반 사건의 1심 판결 78건 가운데 징역형 실형 선고는 13건(16.7%)에 그쳤다.
징역형의 집행유예는 18건(23.1%), 벌금형은 30건(38.5%), 벌금형의 집행유예 5건, 무죄 6건, 기타 6건 등이었다.
재작년엔 1심 판결 50건 가운데 징역형 5건, 징역형의 집행유예도 5건으로 작년보다 더 적었다. 벌금형은 31건, 벌금형의 집행유예 3건, 선고유예 1건, 무죄 1건, 기타 4건 등이었다.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의 채권 추심 관련 신고 접수가 2021년 350건, 2022년 356건, 지난해 768건 등으로 연간 수백건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불법 채권 추심을 한 이들 가운데 일부만 재판에 넘겨지고 그마저도 대부분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불법 추심을 당하더라도 두려움 때문에 피해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설령 용기를 내 신고하더라도 경찰 등 수사기관의 무성의한 대응에 실망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게 상담사들의 전언이다.
특히 최근에는 비대면 소액 대출을 내주고 폭리를 취하는 업자들이 많은데, 카카오톡 유령 계정이나 대포폰을 사용해 추심 협박을 하기 때문에 신원을 특정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각종 사건이 산적한 수사 일선에선 개별 피해 금액이 비교적 적은 불법 추심 사건이 뒷순위로 밀리기 쉬운 만큼, 관련 성과를 업무 평가에 반영하는 등 인센티브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몇몇 전문가는 재판 단계에서도 불법 추심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영중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다른 범죄와 비교할 때 법정형은 높게 설정돼 있지만 벌금형으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면서 "양형기준을 촘촘하게 세분화하고 징역형의 비율을 높이면 불법 추심 행위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채권 추심과 관련해 반복적 또는 야간 방문, 전화 등 행위에 대해서는 징역 4~10개월을, 폭행, 협박 등 행위에 대해서는 징역 6개월~1년6개월을 기본 양형 구간으로 삼고 범행 수법 등 특별양형인자를 고려해 가중·감경 구간을 택하도록 하고 있다.
법 조문을 보다 실효성 있게 다듬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송태경 경제민주화를 위한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형사처벌 대상이 되려면 '반복적'으로 사생활·업무의 평온을 해쳐야 하는데 기준이 모호하다"면서 "이 문구를 삭제하면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거나 전화, 문자를 보내는 행위가 대부분 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송 처장은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 불법 사채 시장이 광범위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채권추심법을 실효성 있게 다듬는다고 해도 불법 추심을 막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팽창·난립하고 있는 불법 사채 시장을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과 경찰은 최근 불법 채권 추심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협의하면서 제도 개선 사항이 있는지도 지속해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