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교과서 프로토타입 체험
박동주 기자 = 2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4 에듀테크 코리아 페어에서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2024.9.23
고은지 기자 = 교육 당국이 내후년 이후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한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은 과목별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현장의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큰 효용이 없는 교과는 제외하고 보완이 필요한 교과는 도입 시기를 늦추면서 수요가 있고 효과가 큰 과목을 중심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이다.
단 내년은 기존 일정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신학기까지 불과 석 달밖에 남지 않은 데다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법안까지 통과돼 AI 디지털교과서가 갈 길이 녹록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로드맵 조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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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우려에 한 발짝 물러선 교육부…로드맵 전격 변경
교육현장에서는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속도가 빠르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런 와중에 지난달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2026년 이후 적용 교과는 조정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것이 결정타가 됐다.
결국 교육부는 29일 2025년 도입되는 AI 디지털교과서 검정 심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변경된 도입 이행안(로드맵·2025∼2028년)을 함께 내놨다.
국어, 기술·가정(초·고교는 실과)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초등학교 사회, 과학과 중학교 과학은 예정보다 1년 늦은 2027년에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기존 로드맵에선 2026년 초교 사회(역사), 과학, 국어, 실과와 중학교 과학, 국어, 기술·가정, 2027년 중학교 사회(한국사), 2028년 고교 사회(한국사), 과학, 국어, 실과로 적용 교과가 확대될 예정이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어는 자기표현이 많은 교과라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가 있었고, 기기를 통한 국어 수업이 문해력을 저하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제외 이유를 설명했다.
기술·가정의 경우 삶과 관련된 교과라 실천적 수업이 주로 이뤄지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사회·과학 도입이 1년 연기된 이유에 대해서는 "(내년 도입되는 수학·영어와는) 약간 다른 형태의 맞춤형 진단이 필요해서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현장 의견을 반영했다"고 전했다.
먼저 배운 것이 뒤에 배우는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위계성이 있는 수학, 영어와 달리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사회나 실험 등을 기반으로 한 과학은 그에 맞는 학습 방식을 보다 정밀하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AI 디지털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일부 출판사가 교과서에 적용한 생성형 AI에 독도에 관해 묻자 '분쟁지역'이라고 답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전면적인 기술 보완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생성형 AI에서는) 온갖 답이 다 나올 수 있으나 강화학습 필터링을 거친다"며 "혹여 미비한 출판사는 반드시 수정·보완하기 때문에 (최종본에선) 그런 오류는 단 한 건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AI 디지털교과서 시제품 시연
(대구= 한무선 기자 = 7일 대구엑스코에서 열린 '2024 교실혁명 콘퍼런스'에서 디지털교과서 시제품 활용 시연이 이뤄지고 있다. 2024.8.7
◇ 내년 신학기 첫 도입까지 3개월…현장 안착 가능할까
2025년에는 예정대로 초3∼4, 중1, 고1 대상 영어, 수학, 정보 교과에서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게 된다.
교육부는 이날 검정 심사 결과를 발표했고 다음 달부터 일선 학교에 최종 합격본을 배포한다.
신학기가 내년 3월 시작되니 교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3개월이다.
교육부는 사전에 연수받은 이른바 선도교사들이 현장에서 교사들을 교육하고 학교별 컨설팅도 추진하면서 신학기까지 차질 없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선도교사도 최종본을 처음 접하는 데다 교사마다 디지털기기 숙련도가 다른 만큼 얼마나 제대로 된 수업 준비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교육부 관계자는 "겨울방학까지 일반 교사 15만명 연수를 목표로 하고 있다"며 "초3∼4, 중1, 고1 선생님은 충분히 연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과몰입 우려가 없다는 교육부의 설명에도 학부모의 걱정은 여전하다.
AI 디지털교과서 단말기는 유해매체를 차단하도록 설정된다지만, 학생들이 우회 경로로 접속할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을지에도 의구심을 품는다.
교육부 관계자는 "AI 디지털교과서는 스마트폰으로 접속이 안 된다"며 "개별적으로 다른 사이트에 들어가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게 원천적으로 배제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날 국회 교육위원회에서는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용 도서(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규정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도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에는 악재다.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교과서와 달리 교육자료는 학교장 재량에 따라 사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설명해 AI 디지털교과서가 교과서로서의 법적 지위를 가지고 교실 변화 및 공교육 혁신에 중요한 기제가 될 수 있도록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육부 발표에 대한 교원단체 입장은 엇갈렸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26개 교육시민단체로 구성된 AI디지털교과서 중단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책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들은 교육부를 공익 침해 행위로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현장 교원과 시도교육감협의회, 교총이 요구한 도입 속도 조절, 인프라 개선, 교사 관리 부담 해소 등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