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불경 언해본 현대어 풀이…김영배 동국대 명예교수 별세
기사 작성일 : 2024-12-01 11:00:29


[해군 제공]

이충원 기자 = 북한 표준어(문화어)가 된 평안도 방언을 연구하고, 한글 창제 직후에 나온 15세기 불경 언해(한글 번역)본을 현대어로 풀어 쓴행촌(杏村) 김영배(金英培)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명예교수가 지난달 29일 오후 7시30분께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1일 전했다. 향년 93세.

평북 영변에서 태어난 고인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동고 교사, 부산여대(현 신라대) 조교수, 상명여자사범대학(현 상명대) 조교수를 거쳐 1980∼1997년 동국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강의했다.

1948년 월남한 뒤 해군에 입대했다가 피난지 부산의 동국대 임시 교사(校舍)에서 국어국문학과 야간 수업을 들은 것이 고인을 평생 15세기 불경에 나타난 중세 국어 연구로 이끌었다. 당시 양주동(1903∼1977)·이병주(1921∼2010) 교수에게 배웠다.

'평안 방언의 음운체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후 '평안 방언 연구', '남북한의 방언 연구', '한국언어지도집' 등을 펴냈지만 고인이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은 책은 '석보상절 제23·24 주해'(일조각, 1972)였다.

석보상절은 수양대군이 지어서 1447년에 펴낸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로 24권 중 10권이 전해진다. 1959년 동국대 출판부에서 이동림(1923∼1997) 교수의 '주해 석보상절'이 나왔지만, 이는 서예가가 붓글씨로 옮겨 적은 것을 풀이한 것이었다. 고인은 한글학회가 1955년과 1959년에 '한글'지에 공개한 영인본을 토대로 역주 작업을 시작, 이후 석보상절과 이 책의 증간본으로 25권 중 20권이 전해진 '월인석보'(1459)를 현대어로 풀어내는 작업을 주도했다.

1461년에 나온 능엄경 언해, 1463년에 나온 법화경 언해 등도 현대어 역주를 펴냈다. 2012년에 나온 '역주 석보상절 제21'은 전립선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는 와중에 펴낸 것이었다.

군 복무 중 학업의 기회를 준 해군과 동국대에 장학금을 기부했다. 국민훈장 모란장(1997), 일석국어학상(2008)을 받았다. 제자인 김무봉 동국대 명예교수는 "평안 방언과 문화어 연구의 중요한 토대를 제공하셨고, 15세기에 어려운 중세 국어로 적힌 불경을 현대어로 옮기셨다"며 "치열하고 정치(精緻·정교하고 치밀)한 학자의 본보기셨다"고 추모했다.

유족은 1남1녀(김종석·김현미)와 사위 최호순씨, 며느리 전혜경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일 오전 8시30분, 장지 국립서울현충원. ☎ 02-3410-6903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전화 02-398-3000, 카톡 okjebo, 이메일 유족 연락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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