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대체에너지사업에 대해 설명하는 박길승 도슨트(75)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제공]
오진송 기자 = "새로운 것을 배우면 얼마나 재미있습니까. 관광객들에게 제주도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어떤 사업을 하는지 알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제주시 제주에너지공사 CFI에너지미래관에서 도슨트로 일하는 박길승(75) 씨는 지난달 29일 전시관을 찾은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학 교수였던 박 씨는 정년퇴직 후 보건복지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에 지원해 '시니어 에너지 지킴이'로 일하며 활기찬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는 학자와 교육자로 산 지난날의 경력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 사회서비스형 노인 일자리 사업인 '노인역량활용선도모델'에 지원해 도슨트가 됐다.
박 씨는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기후변화 관련 도서를 40∼50권 정도 읽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다양한 수준의 방문객 눈높이에 맞춰 설명할 때 보람을 느끼고 교수로 일할 때보다 더 만족도가 크다"며 환하게 웃었다.
산림자원보존 사업단으로 활동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제공]
제주에는 박 씨처럼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노후를 보내는 노인이 많다.
제주도 노인 인구는 올해 7월 기준 12만4천194명인데, 이 중 11.7%(1만4천495명)가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제주는 고유의 환경 자원을 보존하는 데 노인 인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노인역량활용사업을 통해 산림자원 보존사업단에서 일하는 유태진(62), 김제희(64), 김태건(64), 강희규(63) 씨는 기후변화로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 종을 매일 관찰하며 잎과 꽃, 열매가 나는 날짜를 기록하고 종자를 채집하는 등 연구 자료를 만든다.
강 씨는 "현직에 있을 때는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막상 퇴직하고 나니 곧 지루해졌다"며 "다시 일을 하면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동료들을 통해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해졌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앞으로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노인이 더 많아질 텐데 좋은 역량과 경험이 있는 고급 노인 인력을 잘 활용한다면 사회적 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제주= 오진송 기자 = 인형극 배우로 일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이 지난달 29일 제주에너지공사 CFI에너지미래관에서 공연을 마친 후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2024.11.29
인형극 배우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웃음과 교훈을 주는 노인들도 있다.
중학교 교장을 지내다 정년퇴직한 김병수(68) 씨는 29일 CFI 에너지미래관을 찾은 아동들에게 '에너지 절약'을 주제로 한 인형극을 선보였다.
'푸바오'라는 이름의 판다 역을 맡은 그는 판다 인형을 조종하면서 쉽고 재미있는 언어로 '풍력 에너지', '태양력 에너지' 등 신재생에너지의 개념을 설명했다.
김 씨는 "노인에게 일자리는 '삶의 에너지 원천'"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소위 '방콕'을 하면 노화 속도가 빨라지는데 일을 하면 삶의 활력이 생긴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아주 좋은 정책이다. 필요한 노인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새 직업에 도전한 사례도 많다.
한국공항공사에서 퇴직한 강경민(68) 씨는 민간형 노인 일자리 사업인 공동체사업단을 통해 제주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여행 가이드로 일한다.
강 씨는 지난달 28일 제주 시니어클럽에서 열린 노일 일자리 사업 현장 간담회에서 "퇴직 후 제주 시니어클럽에서 관광 가이드 교육을 받은 후 여행 가이드 국가자격증을 취득했다. 여행객들에게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소개하며 활기차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 오진송 기자 =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들이 지난달 28일 제주 시니어클럽에서 열린 현장 간담회에서 사업 참여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2024.11.28
병원동행 매니저로 일하는 한희숙(62) 씨는 "병원동행매니저 1급 자격증을 취득해 환자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보호자에게 진료 내용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일자리가 더 확대돼서 더 많은 이용자가 혜택을 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20년간 간호사로 일하다 지금은 제주에서 '생명지킴이'로 활동하며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상담하는 정희자(69) 씨는 "노인들은 인생 경험이 길기 때문에 마음이 힘든 사람을 정서적으로 지지하는 데 강점이 있다"며 "노년에 보람된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복지부는 내년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자를 이달 2∼27일 모집한다.
교육·건강 수준이 높은 신노년세대의 출현 등 다양한 사회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에는 노인 일자리를 올해보다 6만8천개 늘려 역대 가장 많은 109만8천개를 제공한다.
사업 참여를 원하면 가까운 행정복지센터나 노인복지관, 대한노인회, 시니어클럽 등에 방문해서 신청하면 된다.
노인 일자리 상담 대표전화(☎1544-3388)로 상세한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내년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신청서를 작성하는 노인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