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헌법재판소가 기후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을 열었을 때 헌재 밖에서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자료사진]
이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로 정부 주요 정책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기후정책도 표류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15일 정부에 따르면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와 관련해 각 부처가 추천한 전문가 60명으로 구성된 기술작업반에 의한 복수안 마련 작업이 현재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복수의 안이 마련되면 정부 단일안을 도출할 부처 간 협의가 시작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목표는 같아도 얼마나 감축할지, 누가 감축할지 등 각론을 두고는 정부 내에서도 견해차가 작지 않다.
작년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산업통상자원부가 산업 부문 감축률은 2030 NDC에 규정된 14.5%보다 훨씬 낮은 5%가 한계라고 주장해 막판까지 계획 수립에 난항을 겪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국 1차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산업 부문의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률은 11.4%로 3.1%포인트 하향 조정됐다.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려면 정부 내 리더십이 작동해야 하지만, 탄핵소추안 통과로 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고 국무위원들도 일괄 사의를 표한 상태여서 이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물론 환경부는 당분간 실무 논의가 이어질 예정이어서 2035 NDC 수립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지만 그 여파를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계엄 사태에 국무위원인 장관들이 직간접 연루되면서 각 부처 콘트롤타워 기능이 평시처럼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당장 계엄 선포 당일인 3일 밤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11명 중 한 명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2일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이를 신호탄으로 국무위원들에 대한 줄소환 가능성도 있어 해당 부처는 분위기가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
2035 NDC 정부안이 마련되더라도 후속 절차가 차질 없이 진행될지도 미지수다.
정부안은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 심의·의결로 확정되는데, 탄녹위가 새 위원 후보를 선정하고 검증하는 단계에서 계엄 사태가 터지면서 언제 위원이 위촉될지 알 수 없게 됐다.
탄녹위 민간위원 위촉권자는 대통령이다. 정부 측 위원장은 국무총리이고, 위원은 장관들이다.
법령상 지난 10월 말 임기가 끝난 기존 민간위원들이 후임 위원이 위촉될 때까지 직무를 수행할 수 있어 절차상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임기 만료 상태에서 국가 중요 계획 확정을 위원들이 꺼릴 수 있다.
탄녹위 관계자는 "현 상황 때문에 새 위원 검증 절차가 늦어지거나, 위원을 맡지 않겠다는 분이 나올 수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탄녹위를 새로 구성할 때 법이 정한 대로 아동과 청년, 여성, 노동자, 중소상공인, 시민사회단체 등 각계각층 대표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하지만 계엄 사태로 정부와 시민사회 간 대회가 사실상 단절돼 위원 구성은 물론 2035 NDC 수립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이 반영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있다.
2035 NDC 큰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파리협정은 당사국이 5년마다 NDC를 제출할 때 새 목표는 이전 목표보다 더 높은 수준이어야 한다는 '진전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한국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35 NDC로 제시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8월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불합치한다고 결정하면서 '미래세대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역시 2035 NDC 수립 기준 중 하나로 작용할 전망이다.
NDC는 국제사회와 약속으로 국내 사정을 이유로 제출을 미루기 어렵다.
2035 NDC는 브라질에서 내년 11월 차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가 열리기 9∼12개월 전까지 제출하는 것이 권고된다.
권고를 지키려면 내년 2월까지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해야 하지만 아직 실무 논의를 진행하는 한국은 권고를 따르기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이전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더 줄이는 목표를 기한 내 내야 하는 상황에서 계엄 사태로 논의가 지지부진해진다면 졸속 계획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기에 계엄 여파가 대통령 탄핵 등을 거쳐 조기 대선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실무진으로선 정부가 바뀔 가능성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간 정부에 따라서 힘이 실리는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 달라져 왔기 때문이다.
발전원 조정과 관련해 직전 문재인 정부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앞세웠고 윤석열 정부는 원자력발전을 중심에 둔 게 대표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