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암덩이"…밀수·사보타주 의심받는 러시아 '그림자선단'
기사 작성일 : 2024-12-28 22:00:45

러시아 그림자 선단 소속 의심 선박을 감사하는 핀란드 국경경비대 선박


[EPA 자료사진]

고일환 기자 = 최근 국제사회에서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에 대한 경계심이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그림자 선단이 밀수출에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의 인프라까지 훼손하는 등 국제법 위반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뉴욕타임스(NYT)는 27일(현지시간) 러시아가 국제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운영하는 그림자 선단이 나토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림자 선단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을 제재한 것을 계기로 탄생했다.

노후한 유조선으로 구성된 그림자 선단은 러시아산 원유를 세계 곳곳으로 운반했고, 러시아 정부는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림자 선단의 규모도 급속도로 불어났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림자 선단의 규모를 1천 척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 세계 유조선의 17%에 달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엘리자베스 브로 선임 펠로는 그림자 선단에 대해 "이제 전 세계 유조선 비율의 20%에 가까워지고 있어 관리가 훨씬 어렵게 됐다"며 "암덩어리와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림자 선단이 밀수보다 심각한 범법 행위에 연루됐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지난 25일 발트해에서 발생한 에스트링크-2(Estlink-2) 전력케이블 훼손 사고와 관련해, 핀란드 정부는 그림자 선단에 소속된 것으로 알려진 유조선 '이글S'호를 억류하고 승무원들을 조사했다.


이글S호에 진입한 핀란드 국경경비대 요원


[AFP 자료사진/ Finnish Border Guard 제공]

러시아에서 출항한 이글S호는 전력케이블 사고 지점 인근에서 속도를 급격히 줄인 사실이 확인됐다.

이글S호와 관련한 혐의가 확인된다면 그림자 선단이 유럽의 중요한 인프라를 의도적으로 훼손한 최초 사례가 된다.

나토 회원국들은 전력케이블 훼손을 러시아 그림자 선단의 소행으로 기정사실로 하는 분위기다.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주변 국가들은 보안 강화를 위해 해군과 해안경비대를 추가로 배치하기로 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도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나토는 발트해에서 군대 주둔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뤼터 총장은 "나토는 동맹국들과 연대할 것"이라며 "중요한 인프라에 대한 모든 공격을 규탄한다"고 강조했다.

나토 회원국들이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선 것은 적대국이 수심이 얕은 발트해의 특성상 적대국이 고의로 인프라 훼손과 같은 파괴 공작에 나설 경우 피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발트해에는 에너지를 비롯해 인터넷과 전화 등 통신을 위한 해저 케이블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전력케이블 훼손 사고 이전에도 발트해에선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파손과 광섬유 케이블 절단 등의 사고가 잇따랐다.

라우리 라네메츠 에스토니아 내무장관은 "우리는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뿐 아니라 러시아가 나토 및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상대로 체계적인 하이브리드전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며 "이제는 환상에서 벗어나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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