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한일 정상회담
(리마[페루]= 홍해인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의 한 호텔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11.17
(도쿄·서울= 박상현 박성진 특파원 김지연 기자 = 한일 전문가들은 2일 한국과 일본이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모멘텀으로 삼아 미래지향적 협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구조적으로 한일 양국이 협력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평가지만, 한일관계 개선 물꼬를 튼 윤석열 정부의 탄핵 정국으로 한국의 대일정책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복병은 역시 과거사 문제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이 계속 유효할지가 관건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과거사 문제에 있어 원칙을 견지하되 관계의 틀을 해치지 않는 현실적인 접근법을 모색하며 일본의 호응을 계속 촉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한일 전문가 4인의 진단과 조언.
이원덕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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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덕 국민대 교수
현 정부에서 개선된 한일 관계를 유지하고 지속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 단계고 그 과정에서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또 하나의 모멘텀이 돼야 한다. 국제 정세와 복합 다중 위기 속에서 한일이 협력하고 공조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한미일 협력 체제를 붕괴시키고 다른 대안을 찾는다는 건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 지금 한일 관계가 지속 가능한 게 결국 우리 국익이나 전략에 유익하다고 보고 리더십이 교체된다고 해서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일본과 협력하는 게 우리의 전략·이익이 될 수밖에 없는 구도고 그 속에서 과거사 문제가 있는 거다. 과거사 문제를 들어 일본과 대결 관계로 끌고 가는 게 과연 우리한테 유리한지 생각해봐야 한다. 과거사 문제에서 단호하고 원칙적 입장을 취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근본적인 관계를 뒤바꾸는 액션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계속 일본에 압박을 가하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순진하다. 다루기 어려운 주제고 전략적인 조율이 필요한 문제다. 역사 문제를 아예 포기하느냐 또는 원리주의적으로 가져가느냐는 양자 선택이 아니라 다른 이슈와 관계에서 어느 정도 비중으로 볼 거냐는 게 전략이다. 역사 문제에서 강도를 높이는 조정은 있을 수 있으나 그렇다고 한일 대립을 불사하면서까지 역사 문제를 최대화하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니다.
역사 문제는 어느 정권이 어떤 특효약을 내면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중장기 플랜으로 풀어가야 하고 정부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역사학자나 시민 수준의 끊임없는 대화와 교류, 공동 연구 등을 통해 서서히 바꿔 갈 수밖에 없다.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이 반성론의 입장에 서도록 하는 게 우리 목표고 우리가 대담한 양보를 했으니 일본도 호응 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은 유지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할 말은 하고 단호한 자세를 취하더라도 경제·안보적으로는 일본과 협력하는 기본자세만 흐트러지지 않으면 된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 자료사진]
◇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한국이 탄핵 정국에 돌입하면서 '1965년 체제'가 흔들리게 됐다. 한일 양국은 이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6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문제가 드러났지만, 이 체제의 나쁜 점만 지적해서는 안 된다. 양국이 조금씩 양보하면서 앞으로 한일관계 틀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할지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서 정치 변동이 생겨도 한일관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최근 한국 정세를 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흐름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모든 후보는 박근혜 정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했고, 위안부 합의가 문재인 정권에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적 결단을 내려 사상 최악이라고 평가됐던 한일관계를 개선했다. 이번에 윤 대통령도 탄핵당한다면 한일관계 개선, 한미일 협력 등 그의 외교 정책을 부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럴 경우 한일관계 타격은 위안부 합의 파기 때보다 더 클 것이다. 한국은 국익을 챙긴다는 관점에서 윤석열 정부 정책을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일본은 지금까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와 준비하고 합의했던 것을 착실하게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양기호 교수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
윤석열 정부 들어 한일관계가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측에서 일방적 양보를 많이 했다. 일본 측도 양보를 하면서 한일관계를 안정적으로 만들어왔으면 좋았을 텐데 대응이 없었던 점은 아쉽다. 윤석열 정부의 대일외교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일시적인 봉합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일 양국 국민과 정부가 조금씩 다가가고 거리를 좁혀가면서 만들어내는 공동작품이 그간 많았는데 이를 일방적으로 무시한 채 일방적 양보와 일본의 무반응이라는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게 돼 앞으로 미칠 영향이 우려된다.
역사 문제를 일시에 봉합하는 건 없다. 우리가 원칙을 뒤집고 포기하고 양보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실용적으로 접근할 뿐이지 원칙 자체를 바꾸는 건 안 된다. 원칙을 곱씹으면서 전제로 해서 대화하는 거지 과거사 문제를 묻는 건 안 된다는 거다. 한국 정부가 가진 원칙을 토대로 한일이 서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 외교다.
한일 정부 간에 지금까지 약속한 건 지켜져야 하고 불가역적으로 돼야 한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도 정권이 바뀌더라도 윤석열 정부에서 약속한 건 정부간 약속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다. 지금 같은 탄핵 정국에서 어느 진영이든 물밑에서 일본과 대화를 하는 등 준비를 해나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기무라 간 고베대 교수
[기무라 간 교수측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기무라 간 고베대 교수
한일은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국력 차이가 있었다. 한일 관계는 당시 '대국'(大國) 일본이 '소국'(小國) 한국을 지원하고 또 때로는 그 협력을 요구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군사적 성장과 민주화로 상황이 크게 변해 지금은 수평적 관계가 됐다. 중국과 인도가 대두하는 가운데 한일은 향후 급속한 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국력 저하가 예측돼 그 역할이나 국제적 공간도 줄어들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교 정상화 60주년은 양국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양국 지식인의 기탄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특히 한국 진보계 엘리트와 일본 엘리트의 관계 단절은 심각한 정도다. 양국 관료나 재계, 학계 인사가 수년간 상대국에 체재하면서 인사 교류할 것을 제안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퇴진이 진행되면서 옛 징용공(일제 강제동원 노동자의 일본식 표현) 문제 해법 등 윤 대통령이 추진한 정책 상당수는 부정적 평가를 받고 철회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역사 문제와 관련해 한일 관계는 문재인 정권 말기 상황까지 돌아간다고 보는 것이 좋다. 하지만 안보와 관련해서는 문재인 정권 이후 한국을 둘러싼 국제환경이 크게 변해 진보 정권이 들어서도 한미 동맹을 기축으로 하는 정책 자체는 크게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