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기자 = 무안 제주항공 참사의 원인 규명에 있어 핵심적 역할을 할 블랙박스 분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이를 바탕으로 한 사고 조사 결과가 언제쯤 나올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조종실 음성 기록장치(CVR)와 비행기록장치(FDR)로 구성된 블랙박스는 손상이 없을 경우 분석이 끝날 때까지 통상 3개월가량이 소요된다. 다만 이번 사고에서 FDR은 커넥터 분실로 미국에서 분석이 필요해 소요 기간은 이보다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블랙박스 분석이 끝나도 자료 수집, 청문회 등을 거쳐야 해 조사 마무리까지는 최소 수개월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고 여객기에서 수거한 음성기록장치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원인 규명에 핵심적 역할을 할 블랙박스 비행기록장치(FDR)가 일부 부품 파손 탓에 미국으로 옮겨져 분석 작업을 거치게 됐다. 또다른 블랙박스인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는 데이터 추출 작업이 마무리돼 앞으로 약 이틀 안에 파일 변환을 마치고 분석에 들어갈 예정이다. 사진은 사고 여객기에서 수거한 음성기록장치(CVR). 2025.1.1 [국토교통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블랙박스 분석 통상 3개월 소요…FDR 분석여부에 달려
국토교통부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블랙박스 중 하나인 CVR에서 추출한 자료를 음성파일로 전환하는 작업을 완료하고, 이를 조사에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고 2일 밝혔다.
CVR에는 조종실 내 승무원 간의 대화, 관제기관과의 교신 내용, 조종실 내 각종 경고음 등이 기록된다. 엔진이 정지될 때까지 마지막 2시간 동안의 녹음이 담겼는데 모두 전환에 성공했다고 국토부는 전했다.
하지만 다른 블랙박스인 FDR은 커넥터가 분실된 상태로 발견돼 국내에서 자료 추출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됐다. FDR는 곧 미국 워싱턴의 교통안전위원회(NTSB) 본부로 옮겨 분석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블랙박스 분석에는 일반적으로 3개월가량이 걸리지만 미국에서 커넥터 분실에 대한 대안을 찾아야 하는 이번 사고에서는 분석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것이라고 봤다.
둔덕에 올라 사고 기체 바라보는 미국 합동조사팀
(무안= 손형주 기자 = 31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와 보잉사 관계자,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참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로컬라이저(방위각시설)이 있는 둔덕에 올라 사고기체를 살피고 있다. 2024.12.31
◇ 조사결과 언제 나오나…"길면 3년 후지만 국내 사고라 발표 빨라질 수도"
블랙박스가 본격적으로 조사에 활용되면서 조사 결과 발표 시점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1997년 8월 괌 아가냐 공항 근처 밀림지대에 추락해 228명이 사망한 대한항공 KE801 여객기 사고의 경우 2년 반 만에 조사가 마무리됐다.
미국령 괌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가 바로 블랙박스를 수거했고, 당시 블랙박스는 손상 정도가 크지 않아 몇개월 내 분석이 완료됐다.
이듬해인 1998년 3월 NTSB 주관 청문회에서 블랙박스 내용이나 교신내용이 일부 공개됐지만 최종 조사 결과는 이로부터 1년 10개월 만인 2000년 1월 발표됐다.
가장 최근의 국적 항공사 인명사고인 2013년 7월 아시아나항공 OZ 214편의 샌프란시스코 공항 사고(3명 사망·181명 부상)는 원인 조사 보고서가 나오기까지는 11개월이 걸렸다.
당시 미국에서 사고가 발생한 터라 NTSB가 바로 블랙박스를 회수했고, 블랙박스 분석 후 같은 해 12월에 미국 워싱턴에서 NTSB 주관 청문회가 열렸다.
이듬해인 1∼2월 사고조사 관련 각종 테스트와 기술 검토가 진행됐고, 이후 4개월 만인 6월 최종 사고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참사는 국내에서 발생하고, 피해자 대부분이 우리 국민이라 사고 조사 절차나 결과 협의는 타국 영토에서 다른 나라 국적 탑승객이 희생된 앞의 두 사고보다는 상대적으로 단순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또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국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이번 참사의 조사 주체를 맡아 신속하게 조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과거 항공사고조사위원회에 있었던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 국적기에 국내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희생자분들이 거의 다 우리 국민이라 미국 NTSB 외 타국 정부나 조사기관 등과 협의해야 할 과정이 없어 조사는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 분석하는 미국 조사단
◇ NTSB는 어떤 기관…항공기 사고조사·안전규정 수립에 독보적 역할
블랙박스 분석 등 이번 사고원인 규명에 핵심적 역할을 할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에도 이목이 쏠린다.
NTSB는 1967년에 설립된 미국 교통부 소속 기관으로 미국 내 항공, 철도, 도로 등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조사하고, 사고의 근본 원인을 분석하는 역할을 한다.
NTSB는 사고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현장 조사, 데이터 수집, 블랙박스 분석 등 다양한 기술을 확보하고 있어 전 세계에서 일어난 수십건의 항공사고 조사에 대부분 투입된다.
NTSB는 사고 조사 후 보고서를 몇 차례 올린 후 최종 보고서에서 권고 사항을 작성한다.
권고안은 강제성은 없지만 사고 방지에 아주 중요해 준수율이 상당히 높다. 항공기 블랙박스 의무화, 연료탱크 기준 강화 등도 NTSB의 권고에 따라 만들어진 규정이다.
NTSB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13 부속서에 따라 미국 외에 발생한 항공 사고라도 아주 중대할(serious) 경우 조사에 관여할 수 있다. 미국 국적기의 타국 사고 조사도 할 수 있다.
국토부도 "과거에도 NTSB와 여러 차례 협력했다"며 "NTSB가 일단 블랙박스의 상태 보고 진단하고 난 뒤 제조사의 협조받아 (이송 등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