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대선…'유럽 마지막 독재자' 루카셴코 7연임 유력
기사 작성일 : 2025-01-26 02:00:57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


[A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모스크바= 최인영 특파원 =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70) 벨라루스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를 통해 7연임에 도전한다.

1994년 벨라루스의 첫 민주주의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31년째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번에도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임에 성공하면 집권 기간을 36년으로 5년 더 연장한다.

대선 후보는 총 5명이지만 루카셴코 대통령을 제외한 4명은 허수아비 후보라는 평가다.

자유민주당의 올레크 가이두케비치, 공산당의 세르게이 스란코프, 노동정의 공화당의 올렉산드르 히즈냐크, 통합시민당에서 활동했던 안나 카노파츠카야 등 다른 후보들은 친정부 성향이거나 의미 있는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옛 소련 붕괴 후 벨라루스가 독립한 지 약 2년 반 만인 1994년 7월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소련 시절 집단농장 관리자였던 그는 부정부패 척결과 물가 안정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2000년부터 25년간 실권을 유지하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보다 더 오래 집권 중이다. 그는 2차례 넘게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도록 한 헌법 조항을 2004년 국민투표로 폐지해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벨라루스 대선 조기투표 모습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대선은 2020년 8월 논란의 선거 이후 5년 만에 실시된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당시 80% 득표율로 6연임에 성공했으나 불법·편법 선거 논란이 불거지면서 벨라루스 역사상 최대 규모의 야권 시위와 소요 사태가 벌어졌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강경 진압으로 대응했다. 당시 수만 명의 시위대가 구금됐고 수백 개의 독립언론과 단체들이 폐쇄됐다고 인권단체들은 설명한다.

2020년 대선에 야권 후보로 출마했다가 시위를 이끌었던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는 리투아니아로 망명했다. 인권단체 뱌스나는 벨라루스 감옥에 갇힌 정치범이 최소 1천200명이라고 밝혔다.

티하놉스카야의 남편인 세르게이 티아놉스키를 비롯한 루카셴코 대통령의 정적과 야권 인사들은 대거 투옥되거나 해외로 추방됐다. 2020년 옥중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권 활동가 알레스 비알리아츠키도 정치범으로 수감 중이다.

올해 대선은 당초 8월로 예정됐었으나 대규모 길거리 시위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추운 겨울인 1월로 앞당겼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지난 24일 2020년 대선 불복 시위가 '예방접종'과 같았다면서 "모든 반대자와 적들은 2020년의 일이 절대 반복되지 않을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독재자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굳이 거부하지 않는다. 그는 2012년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나는 유럽의 마지막이자 유일한 독재자다. 사실 세계 어디에서도 이런 사람은 없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2022년 의회 연설에서는 "나는 독재자이며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보드카를 마시고 사우나를 하면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엉뚱한 정책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AP/크렘린풀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루카셴코 대통령은 통치 기간 내내 푸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정치적으로 의존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벨라루스에 확실한 정치·군사·경제적 지원을 해주고 있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다. 대신 러시아는 벨라루스 영토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는 등 벨라루스 안보 보장을 강화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의 '질서 유지'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엔지니어 블라디미르 라바노프는 AFP 통신에 "우리에게는 우크라이나와 같은 전쟁이 없다. 2020년 시위가 성공했다면 벨라루스도 우크라이나와 같은 운명을 겪었을 것"이라며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투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을 위해 푸틴 대통령과 협상하겠다고 나서는 가운데 실제로 종전이 이뤄지면 루카셴코 대통령도 서방과 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 통신은 루카셴코 대통령이 지난해 7월부터 극단주의 활동 혐의로 복역하던 250명을 인도주의적 사면으로 풀어준 것도 이런 분위기와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그가 권력을 내려놓을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필요할 때" 물러날 것이라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그가 아들 니콜라이를 후계자로 키우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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