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범용 반도체업계, 급성장 중국에 생존 위협…"中서 철수"
기사 작성일 : 2025-02-10 16:00:59

중국 반도체 (PG)


[구일모 제작] 일러스트

김준억 기자 = 레거시 반도체(범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 국가인 대만의 업체들이 중국 업체들의 거센 추격에 생존 전략을 고심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자동차나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분야에 쓰이는 레거시 반도체는 '구식 기술'인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상의 노드 공정으로 만드는 것으로 중국 업체들이 정부 지원을 받아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2015년 대만 파워칩테크놀로지가 중국 허페이시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제조) 설립 협약을 체결할 때만 해도 유망한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좋은 기회로 여겼지만, 9년이 지난 지금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 파운드리업체 넥스칩의 저가 공세 등에 따라 한때 수익성이 좋았던 디스플레이용 집적회로 시장을 포기해야 할 처지다.

넥스칩은 28㎚ 이상인 성숙 공정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중국 파운드리 중 하나다. 시장 규모가 563억 달러(약 81조원)에 이르는 레거시 반도체 분야에서 이런 중국 업체들의 급부상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조사 착수 계기가 됐고 대만 업계에 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지난해 파운드리 세계 3위에 오른 중국 최대 반도체업체 SMIC와 세계 6위인 화훙반도체 등은 파격적인 할인과 공격적인 설비 확충 등을 통해 대만 업체인 파워칩과 UMC, TSMC 계열사인 뱅가드국제반도체그룹(VIS) 등을 위협하고 있다.

대만 업체 경영진들은 레거시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첨단 공정으로 전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입을 모았다.

파워칩 인베스트먼트의 프랭크 황 회장은 "우리 같은 성숙 공정 파운드리는 변혁이 필요하다라며 "그렇지 않으면 중국의 가격 인하가 우리 처지를 더욱 엉망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UMC도 세계적 생산력 확장이 업계에 심각한 도전을 야기했다며 인텔과 협력해 첨단 공정을 개발하면서 레거시 반도체 제조를 넘어서는 다양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은 지난 수년 동안 미국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 기술에 제약받자 레거시 반도체에 전력을 다했고, 중국 정부의 강력한 자금 지원에 낮은 이윤을 감수하면서 대만 경쟁사보다 가격을 낮췄다고 대만 업체들은 전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트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별 성숙 공정 파운드리 생산력 점유율은 대만이 43%로 중국(34%)을 앞섰지만, 2027년에는 중국이 45%로 대만(37%)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은 지난해 9%로 3위로 집계됐으며 2027년에는 순위는 같아도 점유율이 7%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됐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 분석에 따르면 2023년부터 2025년까지 생산을 시작할 새로운 반도체 공장 97개 가운데 57개는 중국에 있다.

이처럼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이 공격적 경영에 나서는 가운데 중국 고객사들의 현지화 요구도 대만 업체들을 압박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대만 반도체 설계업체 관계자들은 로이터에 패널 등 소비자 관련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 고객사들이 당국의 공급망 현지화 요구에 따라 중국 파운드리업체에 제조를 위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차이나모바일이나 차이나텔레콤 등 국영 기업들은 중국산 부품 사용에 더욱 엄격하다고 전했다.

시장조사업체 IDC의 갈렌 쩡 연구원은 대만 반도체 설계업체나 파운드리는 레거시 반도체에서 벗어나 공정을 특수화하고 다양화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중국과의 경쟁으로 수익성이 타격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넥스칩 지분 19%를 보유한 2대 주주인 파워칩 인베스트먼트의 황 회장은 주로 중국시장용인 디스플레이 집적회로나 센서 칩의 생산을 줄이고, 3D D램 기술 등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중국에서 사용될 칩과 관련해서 우리는 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철수하지 않으면 생존할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규제와 공급망 분리(디커플링) 강요 등에 따라 일시적으로 숨통은 트일 것으로 전망됐다.

황 회장은 일부 위탁생산 주문이 중국 대신 대만으로 돌려지고 있으며 이런 추세가 빨라질 것으로 기대했다.

익명을 요청한 대만 반도체 설계업체 임원도 2023년부터 중국 밖에서 제조된 칩을 주문하는 고객사들이 늘고 있다며 "일부 고객사는 '메이드 인 차이나'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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