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과 37년 동고동락 임명희 목사…"가난·절망 대물림된다"
기사 작성일 : 2024-09-15 07:00:36

노숙인과 함께하는 임명희 목사


이세원 기자 = 1987년부터 노숙인이나 쪽방 주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임명희(66) 광야교회 담임목사가 9월 12일 서울 영등포구 광야교회 사무실에서 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세원 기자 = "노숙자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이 동네로 왔습니다. 노숙자와 약속한 것이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과 같습니다."

1987년부터 노숙인이나 쪽방 주민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임명희(66) 광야교회 담임목사는 37년 전 이 교회가 있는 서울 영등포구에 자리를 잡게 된 계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전도사였던 임 목사는 청량리역에서 마주친 한 노숙인을 불쌍하게 여겨 '내가 당신이 지내는 곳으로 찾아가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영등포 역 앞에서 지낸다는 말을 듣고 약속을 지키러 찾아간 것이었다. 비록 그 노숙인을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역이 시작됐다.

12일 찾아간 광야교회는 지상 6층, 지하 3층 건물이고 노숙인을 위한 홈리스복지센터를 겸하고 있었다. 지하에 예배당을 두고 1층 식당에서 하루 3끼를 제공한다. 2층은 사무공간, 3∼5층에 노숙인을 위한 생활공간이 있었다. 노숙인 50여명이 기거한다고 한다. 화장실, 샤워실, 세탁실, 의류실 외에 책을 읽거나 PC를 사용할 수 있는 독서실도 갖추고 있었다. 임 목사는 6층에서 일하고 생활한다.


광야교회


이세원 기자 = 노숙인 등을 받아들여 생활 공간을 제공하고 재기를 지원하는 서울 영등포구 소재 광야교회의 12일 모습.

그가 처음 영등포에 왔을 때는 거점으로 삼을 교회가 없어서 쪽방을 찾아다니며 예배를 올렸고, 이듬해 쪽방을 얻어 개조한 뒤 7∼8명 정도가 들어가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1992∼1996년에는 현재 요셉의원이 있는 건물을 교회로 사용했고, 1996년 요셉의원이 들어온 후에는 근처에 천막을 치고 지냈다. 뜻있는 이들의 정성을 모아 2007년 마침내 현재의 교회 건물을 완공해 입주했다.

임 목사는 노숙인을 비롯해 갈 곳이 없는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는 찾아오는 이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한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한 후에는 120∼130명이 천막에서 함께 먹고 자고 했어요. (다른 곳에서 지내는 사람을 포함해) 하루에 1천200∼1300명에게 밥을 줬죠. 많은 날은 1천500명이 와서 먹기도 했습니다. 하루에 20kg짜리 쌀 5∼6포가 필요했어요."


광야교회에 마련된 독서실


[촬영 이세원]

임 목사는 반평생을 노숙인과 동고동락했다. 그의 부인 역시 결혼 전부터 임 목사와 함께 노숙인을 상대로 전도했다고 한다. 영등포에서 와서 세 아이를 낳았고 아이들은 노숙인들과 함께 지냈다고 한다. 이들이 아이를 돌보기도 했지만 보통 사람은 감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적도 있다.

"이곳에 온 청송교도소에서 출소자에게 '젊고 힘이 있는데 왜 일을 안 하느냐'고 책망했더니 어느 날 그가 술을 마시고 저의 아들을 건물 옥상 난간에 앉혀놓고 위협했어요. 아들이 4살 정도 됐을 때의 일입니다."

임 목사는 마음속에서 불길이 타올랐지만, 인생의 막다른 곳에 몰린 출소자와 싸울 수는 없었다. 결국 기도를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고 한다.

광야교회에 온 노숙인은 낮에는 봉사활동을 하거나 교회 운영에 필요한 일을 지원하기도 하고 외부에 일감이 있으면 일하러 나간다. 광야교회는 이들이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돈을 모아 자립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임 목사는 "미국에서 당구 선수로 잘 나가다가 마약에 중독돼 추방당한 분이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마약·술·담배를 모두 끊었다"며 "그분은 돈을 모아서 인근에 방을 얻었고 여기 와서 배식 봉사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광야교회의 미술치료 프로그램


이세원 기자 = 12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소재 광야교회에서 미술치료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재기에 성공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다.

임 목사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고 어머니는 가출해 원망과 절망을 경험한 이들이 어른이 돼 스스로 비슷한 상황을 되풀이하기도 한다"며 "가난, 어려움, 절망은 거의 대물림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특히 그가 10년 동안 돌봤던 '충이 삼촌'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교도소 출소자를 잊을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충이 삼촌은 취중에 칼을 휘둘러 교도소를 들락거리곤 했다. 그의 일상은 술에 찌들어 있었는데 결국 다량의 소주를 한 번에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한 명이라도 사람 노릇 하게 바꾸면 하느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충이 삼촌이 죽으니 희망이 무너져 내렸어요. 화장터에서 돌아오는 데 내 마음속에서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임 목사는 "실패하고 무너져 내리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어요. 그러다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장이지만 그래도 내가 거기 가서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여주는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노숙인, 쪽방 거주자 등으로 구성된 합창단


노숙인, 쪽방 거주자 등으로 구성된 합창단이 9월 7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교회 그레이스홀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광야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는 최근 노숙인, 쪽방 거주자 등으로 구성된 합창단을 꾸려 인근에 있는 신길교회 그레이스홀에서 공연했다. 미드바르축제라고 이름 붙인 이 행사는 올해로 두 번째를 맞이했다. 가난하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내몰린 이들이 희망을 느끼도록 하려고 기획한 행사다.

광야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일대에서 추진 중인 재개발이다. 교회가 재개발 구역에 포함돼 철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재개발 후에는 토지 가격이 올라 교회를 매각했던 돈으로 땅을 사서 다시 교회를 짓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임 목사는 재개발 대상에서 광야교회를 제외하거나, 만약 포함한다면 현재와 같은 수준의 교회를 그대로 지어달라고 당국에 요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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