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레이더] 운전 중 도로 갑자기 '푹'…도심 싱크홀에 시민 불안
기사 작성일 : 2024-09-25 08:00:33

부산서 대형 싱크홀 발생


(부산= 지난 21일 오전 8시 45분께 부산 사상구 한 도로에서 가로 10m, 세로 5m, 깊이 8m가량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해 트럭 2대가 빠져있다. 2024.9.21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전국종합= 어느 날 아침 자동차를 운전해 출근하던 중 도로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영화 같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땅꺼짐(싱크홀) 사고는 우리 주변 곳곳에서 잊을 만하면 발생하고 있다.

최근 몇 달 사이 서울·부산·경기 평택 등에서 사고가 발생해 차량이 땅속에 빠지며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오가는 곳에서 발생하는 사고여서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땅 꺼짐 사고 차량 살펴보는 소방


서대연 기자 = 지난 8월 29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성산로에서 발생한 땅 꺼짐 사고 현장에서 소방 관계자들이 사고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2024.8.29

◇ 도로 곳곳 지뢰밭…4년 6개월간 땅꺼짐 879건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땅꺼짐 사고는 모두 879건이다.

연도별로는 2019년 192건, 2020년 284건, 2021년 136건, 2022년 177건 등이다.

4년 6개월간 1.9일마다 한 번꼴로 사고가 발생한 셈이다.

땅꺼짐 사고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21일 오전 8시 45분께 부산 사상구 한 도로에서 가로 10m, 세로 5m, 깊이 8m가량의 대형 땅꺼짐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부산소방본부 차량과 반대편에서 지나가던 5t 화물차가 각각 꺼진 땅에 빠졌다.

차량이 싱크홀에 빠지기 전 바퀴가 걸쳐 있는 상태에서 탑승자들이 재빨리 빠져나오면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대낮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땅꺼짐 현상이 발생해 시민들이 크게 다치는 일도 있었다.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26분께 서대문구 연희동 한 도로에서 가로 5m, 세로 4m, 깊이 2.5m의 땅꺼짐이 발생해 승용차가 빠졌다.

이 사고로 차량에 타고 있던 운전자와 동승자가 다쳐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현장 영상 속에는 차량이 편도 4차로 도로를 줄지어 달리는 가운데 갑자기 도로 한 가운데가 푹 꺼지면서 승용차가 순식간에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장면이 담겼다.

지난 7월 16일 세종시 한 아파트 인근 산책로에서도 가로 4m, 세로 3m, 깊이 3m의 땅꺼짐 현상이 발생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아파트 주민이 수시로 산책하는 장소여서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앞서 지난 6월 경기 평택시 한 도로에서도 깊이 1m, 폭 3m의 땅꺼짐 현상이 발생, 택시 앞부분이 빠져 차체의 뒷부분이 들린 채 멈춰 서는 영화 같은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세종시 도심 아파트 인근 싱크홀


(세종= 한종구 기자 = 지난 7월 16일 세종시 한 아파트 인근 산책로에서 땅꺼짐이 발생해 관계 기관이 긴급 복구를 하고 있다. 2024.7.16.

◇ 노후 상하수관·집중호우·부실공사 등 원인도 다양

정부가 발표한 싱크홀 사고의 원인을 보면 전체 879건 가운데 하수관 손상이 396건으로 전체의 45.1%를 차지한다.

하수도에서 새어 나온 물이나 빗물 등이 공사장 등을 지나며 구멍이 생기고 잦은 진동과 하중이 가해지면서 땅꺼짐 현상이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이어 공사 구간 다짐(되메이기) 불량 153건(17.4%), 굴착공사 부실 52건(5.9%), 기타 매설물 손상 45건(5.1%), 상수관 손상 32건(3.6%) 순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서울 연희동에서 발생한 땅꺼짐 사고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매립지로 형성된 취약한 지반에 지하수가 겹치면서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조원철 연세대 건설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하수도에서 새어 나온 물이나 빗물 등으로 구성된 지하수가 흐르기 좋은 곳이 상수도, 하수도, 지하철 공사 등 인위적인 조작이 가해진 곳"이라며 "물이 흐르면서 구멍이 생기고 잦은 진동과 하중이 가해지면 땅이 꺼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부산 사상구에서는 올해만 8차례에 걸쳐 땅꺼짐 현상이 발생했지만, 아직 뚜렷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사고 장소가 도시철도 공사 현장과 가까운 지역이어서 지하철 공사가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부산교통공사는 연약한 지반에 상하수도 시설이 노후화한 것을 원인으로 꼽았으나 땅꺼짐 현상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원인 규명을 밝히는 용역을 진행하는 등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밖에도 전문가들은 땅꺼짐 현상의 원인으로 굴착공사 중 지하수·토사 유출관리 미흡 및 설계·시공불량, 지하 시설물 사용 중 지하 시설물의 노후화로 인한 파손, 지하 시설물 주변 지반 다짐 불량 등을 꼽고 있다.


평택서 상수도관 파열로 생긴 싱크홀에 차량 빠져


(평택= 최종호 기자 = 지난 6월 24일 오전 11시 30분께 경기도 평택시 이충동의 한 도로에서 상수도관 파열로 발생한 싱크홀에 차량이 빠지는 사고가 났다. 평택시와 경찰에 따르면 깊이 1m, 폭 3m 가량의 포트홀에 택시의 앞부분이 빠져 차체의 뒷부분이 들린 채 멈춰 섰다. 2024.6.24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지반탐사 지원 확대·노후 하수관 교체 속도

정부는 땅꺼짐 사고가 잇따르자 고위험 지역을 정해 중점 관리하기로 했다.

노후 하수관로 주변, 상습 침수구역, 집중 강우지역 등을 정해 수시로 점검하겠다는 뜻이다.

또 조사자가 육안으로 지하 빈 공간(空洞·공동)을 판별하는 현재 분석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공동 분석 인공지능(AI) 표준 모델'을 개발하기로 했다.

아울러 우려지역 정보를 환경부와 공유하는 한편 땅꺼짐 현상의 주범으로 꼽히는 노후 하수관 교체 속도도 높이기로 했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3일 지하안전 관리체계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전문가 간담회에서 "지반침하 예방을 위해 지속적인 탐사와 발견된 공동에 대한 신속한 복구가 중요하다"며 "기존 탐사·복구 위주 관리 방식에서 예측·예방 중심의 스마트 지하안전관리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지반 침하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도 땅꺼짐 예방을 위해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공동 탐사를 진행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기 수원시는 관내 모든 도로를 대상으로 지표투과레이터(GPR)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GPR 탐사는 땅속에 전자파를 쏴 반사되는 전파를 영상으로 해석해 공동을 탐지하는 것으로, 땅꺼짐 예상 구간을 파악할 수 있다.

수원시는 AI 시스템을 활용해 탐사 결과를 분석한 뒤 땅꺼짐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곳에 대해 복구공사를 진행한다.

충북 청주시도 2022년 GPR 장비를 구입해 공동 탐사에 나섰다.

청주시는 GPR 장비를 활용해 땅꺼짐 우려 지역에서 하수관이 깨진 곳을 찾아 보수 작업을 벌였다.

서울 성동구는 2017년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한 지하공간 안전관리시스템을 도입한 데 이어 2020년부터는 지하공간 누수진단 시스템을 도입해 상수도 누수 여부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전북 익산시는 노후 하수관로 정비에 나섰다.

20년이 넘은 하수관 가운데 변형이나 파손 등 중대한 결함이 발견돼 땅꺼짐이 우려되는 지역에 대해 우선 정비를 시행하는 방식이다.

이밖에 경기도는 '지하안전지킴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지하안전지킴이는 지반침하 취약 시기인 해빙기(3∼4월), 우기(6월), 집중호우기(9월)에 시군 지하 개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 관련 협의 내용 준수 여부 등을 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 278개 현장을 점검했다.

(박정헌, 노승혁, 김상연, 최종호, 강태현, 장지현, 한종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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