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 포획 포상금'에 두배로 늘어난 엽사…오인 사격 반복
기사 작성일 : 2024-10-09 08:00:32

(연천= 심민규 기자 = 멧돼지 등 야생동물 포획 포상금제가 도입된 이후 엽사들이 크게 늘었지만 이들에 대한 관리는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오인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농작물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엽사들을 활용할 필요성이 있지만 허술한 면허 발급과 느슨한 운영 등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생동물 멧돼지 포획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9일 경찰과 연천군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밤 경기 연천군에서 40대 남성 엽사 A씨가 동료 엽사의 총에 맞아 숨진 사고는 안전 장비가 미비해 발생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엽사들은 본인들을 식별할 수 있는 형광 안전조끼도 착용하지 않았고 어두운 밤 열화상카메라에만 의존했다.

열화상카메라가 작동하자 엽사들이 차에서 내려 방아쇠를 당겼지만, 멧돼지가 아닌 A씨가 맞았다.

또 애초 멧돼지 출몰 신고를 받고 포획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자발적인 포획 활동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연천군 유해 조수 구제단 소속인 이들은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파출소에서 총기를 출고하면 야간시간대에 자유롭게 멧돼지를 포획할 수 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어두워서 실수한 거 같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멧돼지 포획에 나섰다가 실수로 사람을 총격한 사고는 지난 7월 경북 영주시와 강원 횡성군에서도 발생했다.

영주에서는 밭일하던 50대 여성이 숨졌고, 횡성에서는 엽사인 50대 남성이 중상을 입었다.

두 사고 모두 밤늦은 시간에 발생했으며 이들에게 총을 쏜 엽사들은 "멧돼지로 오인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런 수렵용 총기 사고는 2018∼2022년 5년 동안 40건이 발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58건)의 69%를 차지한다. 수렵용 총기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15명이나 된다.


야생 멧돼지가 돼지열병 전파? (CG)


[TV 제공]

유해 동물 오인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는 데 대해 업계에선 포상금제에 주목하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을 막기 위해 멧돼지 포획 시 마리당 20만원을 주는 포상금제가 2019년 말 도입된 이후 엽사들이 많아졌다. 환경부에 따르면 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2018년 1만5천여명이었던 수렵면허 1종 소지자는 지난해 말 3만1천337명으로 증가했다.

정부가 주는 포상금 20만원 외에 지방자치단체들도 최소 5만원에서 최대 30만원까지 별도 포상금을 주고 있어 과거 포상금이 없던 시절 신고를 받고서야 출동하던 엽사들이 이제는 자발적으로 사냥에 나서고 있다.

30년 경력의 한 엽사는 "예전에는 포획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니 포획물을 섭취하기도 하고 오늘 못 잡아도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며 "요즘에는 엽사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어떻게든 잡으려 하다 보니 경쟁이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다른 엽사는 "ASF 발병 이후 낮에 개를 데리고 멧돼지 사냥을 나서는 것도 금지되면서 야간에 활동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돈에 현혹이 되다 보니 많이 잡아서 포상금을 나눠 가지는 팀도 많아졌다"고 전했다.


전방 야생멧돼지 총기 포획 (PG)


[권도윤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업계에서는 오인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엽사에 대한 관리가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연천 사고 당시 엽사들은 연천군과 해당 마을에 보고 하지 않고 총기를 출고해 포획 활동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천군 관계자는 "총 6개 단체, 엽사 39명이 연천군의 허가를 받아 구제단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포획에 나서기 전에 보고하지는 않고 포획하고 나서 활동 일지로 보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전에 보고가 이뤄지고 주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하는 문자 메시지 등이 발송되면 주민들의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다.

안전한 야간 포획을 위해서는 형광조끼, 랜턴 등 보호장구와 열화상카메라를 써야 하지만 이 또한 의무 사항은 아니다.

수렵 면허를 좀 더 까다롭게 발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제도에서는 필기시험 60점 이상만 받으면 4시간의 클레이 사격 강습과 정신·신체 진단서를 제출해 1종 수렵 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야생동물 특성에 맞춘 사격 실기 시험이나, 실제 수렵 현장에서 사용되는 보호장구 및 열화상 카메라 조작법에 대한 교육은 부족한 상황이다.

야생생물관리협회 관계자는 "야간에 불도 없이 저가형 열화상카메라에만 의존하다 빨간 물체만 보이면 방아쇠를 당기다 종종 사고로 이어진다"며 "수렵면허 취득 자격요건도 높이고 안전 교육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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