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뜨면 아들이 어디엔가 있을 것 같아요"
기사 작성일 : 2024-10-22 14:00:31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


김인철 기자 = 22일 서울 중구 별들의집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기록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10.22

송광호 기자 = 2년 전 이태원 참사로 딸을 잃은 이정민 씨는 10월이면 바쁘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서 여러 행사에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몸은 힘들지만, 그런 바쁜 생활이 그에게 때론 안도감을 준다고 한다. 딸 없는 긴 생을 이어가야 할 그로서는 그 시간이 일종의 버팀목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0월에 많은 일을 하려는 이유는 유가족들이 10월을 견디기 위해서입니다. 뭔가를 해야만 우리가 버틸 수 있으니까요."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22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별들의 집'에서 열린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이처럼 말했다.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출간 기자간담회


김인철 기자 = 22일 서울 중구 별들의집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기록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10.22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는 이태원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유가족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이 25명의 유가족을 만나 인터뷰하고 동행 취재한 결과를 담았다.

책에는 자식을 잃은 유가족의 절절한 사연이 담겼다. 차게 식은 딸의 몸을 40분이나마 안아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는 수빈 어머니, 분향소에 매일 출근하며 당국의 철거 위협에 맞서 밤새 아들의 영정을 지켜온 동민 아버지, 사고 당일 "빨리 이태원으로 오셔야 한다"는 딸 남자친구의 다급한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하는 주영 아버지(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 등 다양한 유가족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찾은 시민들


[ 자료사진]

산하 어머니 신지현 씨는 참사로 잃은 자식을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산하를 낳고 기른 곳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어린 산하와 손잡고 걷던 산책로가 나온다. 그는 산하가 다니던 유치원을 지나, 산하가 좋아하던 빵집을 지나, 산하가 아르바이트하던 식당을 지나 일터로 출근한다. 출근길을 지나가며 엄마는 기억 속에서 다섯살 산하, 초등학생 산하, 중고등학생 산하, 대학생 산하를 매일 만난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아이를 내 눈으로 봤고, 사망 처리도 했으니까 아이가 세상에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도 어디엔가 산하가 있을 것 같아요." (95쪽)


이태원 참사 골목길에 가득한 추모객들


[ 자료사진]

송해진 씨의 아들 재현(당시 16세)이는 참사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경우다. 함께 간 친구들이 모두 참사의 희생자가 됐으나 저만 살아남은 걸 그는 견디지 못했다. 가까스로 생환한 그는 그날의 일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아 보기도 했지만 크게 나아진 것 같진 않았다. 그는 참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인터넷을 뒤졌다. 세상을 떠나기 전 재현이는 '아프지 않게 가는 법'을 검색했다고 한다. 그렇게 재현이는 참사 후 떠났다. 해진 씨는 아직도 아들이 남긴 영상 메시지를 보면 마음이 미어진다.

"엄마 아빠 너무 사랑하고, 다음 생에도 나 정말로 엄마랑 아빠 같은 부모가 있었으면 좋겠어." (173쪽)


이태원참사 희생자 추모 묵념


김인철 기자 = 22일 서울 중구 별들의집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기록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시작에 앞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2024.10.22

책에는 국내 유가족뿐 아니라 해외 유가족들의 이야기도 담겼다. 호주인 희생자 그레이스 래치드의 어머니, 이란인 희생자 알리 파라칸드의 어머니와 고모 이야기도 수록됐다. 아울러 재난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혀야 하는 이유와 이태원 참사에 대한 법적 책임을 넘어 구조적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에 대한 시민사회의 고민도 엮었다.

이정민 위원장은 어떤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윤석열 대통령을 가장 먼저 언급한 뒤 "지도자로서 이 참사를 겪고 있는 국민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꼭 읽어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창비. 4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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