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격변] ⑤ 녹색 괴물이 점령한 소양호…언제까지 하늘 탓만 하나
기사 작성일 : 2024-10-27 08:00:33

[※ 편집자 주 = 최근 폭염과 기후 온난화로 강원에서도 이상 기후 피해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주민과 관광객 불편뿐만 아니라 농작물 수급 불안으로 물가 상승, 경기 침체 등 또 다른 재앙을 예고하는 상황입니다. 는 강원 도내 바다와 해안, 농어촌 최일선 기후변화 현장을 점검하고, 미래 대응을 위한 실마리를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격주로 송고합니다.]


'수도권 식수원' 소양호 상류에 녹조 발생


[ 자료사진]

(인제= 양지웅 기자 = 강원 인제·양구지역을 둘러 흐르는 소양호 상류는 본디 청정 수질을 자랑하며 내수면 어업인들에게 싱싱한 물고기를 한 아름 선물해왔다.

하지만 작년 여름 유래를 찾기 힘든 대규모 녹조가 수면을 점령했고, 올여름에도 이를 거듭해 '청정 수자원'이라는 자랑거리가 무색해졌다.

전문가는 물론 주민들까지 날씨 탓만 할 수 없다며 여러 대책을 찾고 있지만, 지금 같은 불볕더위가 계속된다면 강과 호수를 점령한 녹색 괴물을 쫓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소양호 상류 녹조 제거 작업


[ 자료사진]

◇ 지난해 소양강댐 준공 이후 첫 녹조 발생…올해도 거듭해

"뙤약볕 아래서 한증막에 들어가 작업하는 기분입니다. 등에 땀띠가 날 지경이네요."

최강 폭염이 이어지던 작년 여름 한강 최상류인 인제군 소양호 일원에서는 녹조 제거 작업이 벌어졌다.

수자원공사 관계자 10여명은 30도를 훌쩍 뛰어넘는 더위 속에 상체까지 덮는 방수복 차림으로 허리춤 높이의 호수에 들어가 긴 띠를 이용해 녹조를 뭍으로 긁어모으며 구슬땀을 연식 닦았다.

수온마저 30도 넘게 치솟아 바라만 봐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이곳에 대규모 녹조가 발생한 것은 소양강댐이 건설된 1973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례적인 녹조는 올해도 거듭했다.

지난 7월 말 공중에서 바라본 소양호 일대는 이미 녹조가 점령한 상황이었다.

인제대교에서부터 시작한 녹조는 38대교까지 4㎞ 넘게 퍼졌고 아래로 10㎞ 넘게 떨어진 양구대교 인근까지 뻗쳤다.

물가에 떠밀린 녹조는 장마에 떠내려온 쓰레기 등 각종 부유물과 뒤엉켜 부패해 역한 냄새를 풍겼다.

물가에 정박한 어선 2척은 녹조에 발이 묶여 출어를 포기한 모습이었다.

녹조 제거 작업 모습을 지켜보던 한 어민은 "여기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작년부터 녹조가 심하게 발생했다"며 "악취도 심하고 이런 물에 사는 물고기를 잡아봤자 내다 팔 수도 없어서 그냥 쉬고 있다"고 말했다.

녹조를 발생시키는 남조류는 독성을 함유하고 있고 악취를 유발해 상수원을 오염시키며, 용존산소 부족으로 물고기 등의 집단폐사가 발생해 수생태계 교란이 일어나 어족자원 고갈로 경제적 피해마저 초래한다.


녹조가 점령한 소양호 상류


[ 자료사진]

◇ 강수·폭염·지형 복합 원인…오염원 유입 원천 차단 급선무

소양호 대규모 녹조 발생은 강우로 인해 유입된 오염원과 이어지는 폭염, 지형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수자원공사 한강유역관리처 자료에 따르면 긴 장마와 집중 호우로 내린천과 인북천 상류에서 오염물질이 소양호로 유입된 상황에서 고온과 폭염, 강한 햇빛이 수온을 높여 녹조를 형성하는 조류가 급속도로 번성했다.

여기에 강폭이 넓어지는 인제대교의 지형 특성상 유속이 감소하는 구간에 물이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대형 녹조 발생을 부추겼다.

2021년은 기온이 높고 일조량이 많았으나 강수량이 적고 소양강 수위가 평년보다 낮았고 재작년의 경우 5∼7월 강수량이 500㎜ 이상 기록했지만 기온이 낮아 녹조 발생이 억제된 것으로 조사됐다.

수자원공사는 녹조가 하류로 번지는 것을 막고자 다중 차단막과 물 흐름 촉진 장치, 에코 로봇, 선박, 오일 붐 등을 활용하면서 환경청과 비상 대응 체계를 구축, 도 보건환경연구원과 합동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지만 대규모 녹조 발생에 제때 대응하기에는 애를 먹고 있다.

이에 오염원 발생 정보 파악과 더불어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한 맞춤형 오염원 관리 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고농도 오염물질이 대량으로 유입하기 쉬운 상황에서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는 오염원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견해다.

지역의 고질적 문제로 꼽혀온 흙탕물 유입을 예방할 수 있는 비점오염 저감 대책사업의 확대 추진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이는 단년생 작목을 다년생 작목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밭고랑 댐 설치, 밭 경계 식생대 조성 등 농경지에 적용할 수 있는 토사 유출 저감 기법을 발굴하고 확대 적용하는 사업이다.

이수현 인제군의원은 "비점오염 저감 대책사업은 많은 예산이 필요한 만큼 환경부 등에 녹조 발생 억제 정책을 위한 사업비를 별도 신청하는 등 비점오염 저감을 위해 많은 예산을 확보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소양호 점령한 녹조


[ 자료사진]

◇ "고인 물 흐르게 해야"…정부 치수 정책 개선 목소리도

거듭한 대규모 녹조 발생을 계기로 오염원 저감과 유입 방지 정책을 넘어 정부의 치수 정책 개선 요구도 지역 환경단체에서 나오고 있다.

사단법인 인제천리길에 따르면 녹조가 발생한 인제대교부터 38선휴게소까지 드넓은 땅은 지역의 대표적인 평야였지만, 소양강댐 건설 이후로 댐 수위에 따라 들판이 잠기기 일쑤다.

댐 수위가 180m를 넘으면 땅이 물에 잠기기 시작하는데 앞서 설명한 것처럼 이곳의 지형 특성상 유속이 감소하는 구간에 물이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고이게 된다.

수온이 오르기 쉬운 여름철에 댐이 높은 수위를 유지하게 된다면 넓고 얕게 고인 물에 강한 일사가 더해지고, 여기에 오염원이 대거 흘러든다면 말 그대로 '녹조 양식장'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시민·환경단체들은 소양강댐의 여름 저수율을 낮추고 물을 자주 흘려보내 인제대교 인근에 물이 고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호진 인제천리길 대표는 "소양호 녹조 발생은 오염원을 강으로 흘려보내는 주민 책임도 있지만, 수도권 용수 공급을 위해 소양강댐을 높이 채워놓는 정부 정책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치수 정책을 고치지 않으면 환경 오염은 물론 수도권 시민들의 마실 물을 정화하는 비용도 치솟을 것"이라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방제보다는 예방에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녹조 가르는 오리들


[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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