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트= 성연재 기자 =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는 대서양을 접하고 있는 도시다.
깔끔하게 정비된 라바트 시내의 모습은 탕헤르나 카사블랑카 등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다른 도시에 비해 잘 가꿔진 느낌이 들었다.
라바트는 때마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방문으로 도시 전체가 들뜬 분위기였다.
거리 곳곳에 프랑스 국기와 모로코 국기가 나란히 게양돼 있었다.
모로코와 프랑스의 역사를 알고 있었기에 다소 의아한 느낌마저 들었다.
프랑스는 1912년부터 1956년까지 모로코를 스페인과 함께 분할 통치했다.
모로코 라바트의 우다야 카스바
[사진/성연재 기자]
과거 식민 지배를 받아온 것에 대한 반감이 없느냐는 질문에 가이드 모하메드 씨는 "프랑스가 의료와 교육 체계를 확립해 줘서 국민감정이 전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 나란히 내걸린 프랑스와 모로코 국기
[사진/성연재 기자]
모로코는 이번 양국 정상회담 이후 양국이 최대 100억 유로(약 15조원)에 달하는 계약을 프랑스와 체결했다는 후문이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프랑스 철도 제조업체인 알스톰은 이번 맺은 계약에 따라 최대 18량의 고속열차를 모로코에 공급한다고 AFP는 전했다.
1999년 즉위한 모하메드 6세는 프랑스어를 의무교육화할 만큼 프랑스에 대해 호의적인 인물이다.
라바트의 모하메드 5세 영묘
[사진/성연재 기자]
이런 분위기 덕분인지 최근 몇 년 사이 모로코와 프랑스 사이는 그 어느 때보다 좋다는 것이 모로코인들의 설명이다.
마크롱은 지난 7월 모로코와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 사이의 영토분쟁 지역에서 모로코의 영유권을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도 했다.
양국은 어두웠던 과거사를 뒤로하고 협력 강화를 모색하고 있는 모습이다.
취재진 중 한 명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넘어서고자 노력하는 프랑스와 모로코가 부럽다"면서 "제국주의 유럽 국가와 식민 통치를 받았던 아프리카의 이런 협력은 단순히 산업적 성과를 뛰어넘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 우리와 닮은 듯 다른 TGV
모로코 TGV 알보라크
[사진/성연재 기자]
탕헤르에서 다음 목적지인 카사블랑카로 이동해야 하는 데는 차로 5시간 걸린다고 한다.
관광청 직원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철도를 이용할 것이라 알려왔다.
고속철을 타면 2시간 남짓이면 카사블랑카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고속철이라고요?"
취재진은 귀를 의심했다.
모로코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고속철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탕헤르에서 수도 라바트, 카사블랑카까지 현재 테제베(TGV)가 깔려 운행되고 있었다.
시티센터 옆에 있는 탕헤르역에 도착하니 모로코 국영철도(ONCF)의 모로코산 TGV인 '알 보라크'가 플랫폼에 서 있다.
'모로코 TGV' 알 보라크 2층 객실
[사진/성연재 기자]
2018년 개통된 이 기차는 아프리카 최초의 고속철이다.
최고 시속 320㎞로, 우리나라 KTX의 305㎞보다 빠르다.
우리나라의 KTX와 닮은 듯 다르다.
2층짜리 객차를 쓰는 프랑스의 TGV인 유로 듀플렉스를 개선한 제품이라고 한다.
마침 객실이 2층이었는데, 무척 쾌적하고 조용했다.
탕헤르-카사블랑카 기준 2등 칸의 가격은 224디르함(약 3만1천350원)이다.
이제 고대의 내륙도시 마라케시까지 고속철이 뚫릴 차례다.
카사블랑카 해변의 건설현장
[사진/성연재 기자]
대부분 프랑스의 기술력으로 건설됐지만, 한국 기업에도 기회가 왔다.
지난 2022년 국가철도공단은 모로코 철도청이 발주한 100억원 규모의 '모로코 고속철도 3공구(누아서∼마라케시)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의 최종낙찰자로 선정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가철도공단이 맡은 구간은 203㎞에 달한다.
TGV에서 내린 카사블랑카에서도 건설 붐을 관찰할 수 있었다.
대서양을 접한 코흐니슈 지역의 최고급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서도 힘찬 굴삭기 소리가 들렸다.
평소 같았으면 거슬렸을 소음이지만,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북아프리카를 목격했기에 오히려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