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발표하는 김정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일 오전 9시 30분(평양시 기준 9시)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2018.1.1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이우탁 기자 = 2018년 새해 첫날 조선중앙TV로 중계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육성 연설은 미국과 북한 관계의 흐름을 바꾼 실마리가 포함돼있었다.
김정은은 먼저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 핵 타격 사정권 안에 있으며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는 것, 이는 결코 위협이 아닌 현실임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핵무력 완성을 강조하는 한편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를 언급하며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까지 위협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신년사에는 "남조선에서는 겨울철 올림픽 경기대회가 열리는 것으로 하여 북과 남에 다 같이 의의있는 해"라는 대목이 담겨있었다.
이어 "동결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어야 한다"는 당부도 뒤따랐다.
김정은의 신년사에 한국 정부가 적극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신년사가 나온 다음날 트위터 글을 통해 "로켓맨이 지금 한국과의 대화를 처음으로 원한다"면서 "아마 이것이 좋은 소식인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는 두고 볼 것"이라고 말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고리로 국면은 갑자기 협상 국면으로 전환됐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과 김영남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한국을 방문했고, 그해 3월 김정은은 한국과 미국에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그리고 4월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의 중단을 선언했다.
'중재자'를 자처한 한국을 통해 김정은은 미국에 협상 메시지를 보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호응해 그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내정자[사진출처 신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조선중앙TV]
미국과 북한은 정상회담 개최 이전 고위급 회담을 열었다. 미국에서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대북특별대표를 겸한 스티브 비건 부장관이, 북한에서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과 최선희 외무성 1부상이 협상을 맡았다.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은 북한 비핵화의 개념과 그 대상, 방식 등에 대해 집중 협의했으나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그런 상황인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자신이 '리틀 로켓맨'으로 불렀던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 임했다.
세계인의 관심 속에 진행됐던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국면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단아'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성과 협상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런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해 곧 대통령에 취임하면 다시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로이터 통신은 26일(현지시간) 트럼프 당선인 측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과 김정은 간의 직접 대화 추진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해 주목된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하면서 다시 만날 가능성에 여지를 남긴 점을 들어 로이터 통신의 보도내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직전인 지난달 9일 자신의 재임 시절, 김 위원장이 자신과 '핵무기 발사 단추'를 거론하는 거친 언사를 주고받은 뒤 전화를 걸어와 회담을 제안해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21일 평양에서 열린 무장장비전시회 개막 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는 점을 들어 미북 정상회담이나 협상국면의 재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연설하는 북한 김정은
(평양 조선중앙통신= 북한 제4차 조선인민군 대대장, 대대정치지도원 대회가 지난 14-15일 평양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보도했다. 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틀차 행사에서 '조성된 정세와 공화국무력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들의 임무에 대하여'를 주제로 연설했다고 전했다. 2024.11.18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김정은은 "우리는 이미 미국과 함께 협상주로의 갈 수 있는 곳까지 다 가보았으며 결과에 확신한 것은 초대국의 공존의지가 아니라 철저한 힘의 입장과 언제 가도 변할 수 있는 침략적이며 적대적인 대조선(대북) 정책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8년의 경험을 떠올리면 다른 가능성도 상정 가능하다. 북한은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핵무력 완성을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사거리 4천500km의 화성 12호 중거리미사일(IRBM) 발사에 이어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사거리 1만km의 신형 ICBM 화성 14호 발사를 강행했다.
그리고 2017년 9월 북한은 6차 핵실험이라는 중대 도발을 했다. 그 이전에 실시했던 북한의 핵실험은 대략 히로시마 원폭 위력인 10kt 수준과 비교됐으나 6차 핵실험은 그 강도가 100kt을 초과하는 수소탄 실험으로 평가됐다.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신형 ICBM 화성 15호 최초 시험발사에도 성공해 북미 대륙 전체를 사정권에 뒀음을 과시했다.
이렇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충격을 주던 북한은 이듬해 갑자기 태도를 바꿔 화려한 '탑 다운' 정상외교에 나선 것이다.
물론 김 위원장은 "우리 당과 정부는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 국가의 안전권이 침해당하는 상황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손으로 군사적 균형의 추를 내리우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임을 다시금 분명히 한다"고 말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중대변수로 인해 러시아와의 군사동맹을 강화한 북한 입장에서는 2018년과 같은 극도의 고립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향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느냐에 따라 상황이 변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2025년 김정은의 새해 메시지에 벌써부터 관심을 끄는 이유다.
트럼프와 김정은 (CG)
[TV 제공]
2018년에는 '중재자'로 한국 정부가 나섰다면 이번에는 일본인 납북 문제를 고리로 북한과 협상하려는 일본 정부가 역할을 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 노력, 그리고 미중관계의 전반적 흐름 등이 정리되는데 필요한 시간이 소요된 뒤인 내년 봄에나 전체적인 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휴전협상이 진행될 경우 이를 고리로 미국과 러시아의 대화가 진행되면서 국제질서의 흐름이 정리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의 경우 완성된 핵무력의 보존과 확실한 안전판 확보, 그리고 자력갱생 노선에 대한 재검토 등의 사전조건이 충족돼야 하는 것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