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미 기자 = 롯데그룹이 창사 이래 처음 불거진 위기설에 따른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보름간 숨 가쁘게 달려왔다.
신용 보강을 위해 그룹의 상징인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내세우고, 역대 최대 규모의 물갈이 임원 인사를 단행하면서 쇄신의 의지를 보였다.
산업계와 금융시장에선 롯데의 대응 움직임에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롯데케미칼[011170]이 오는 19일 개최할 예정인 사채권자 집회를 앞두고 시장 불안 심리가 가라앉을지 주목된다.
롯데월드타워 전경
[롯데물산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1일 재계와 산업·금융투자업계 따르면 롯데그룹의 최근 행보를 두고 '예상을 뛰어넘은 수준'의 대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롯데는 지난달 16일 유동성 위기설을 담은 지라시(정보지)가 퍼지면서 주가가 흔들리자 "사실무근"이라고 공시한 데 이어 지난달 21일 롯데케미칼의 회사채 이슈가 발생하자 "보유 주식과 부동산, 즉시 활용할 수 있는 예금 등이 108조9천억원으로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다시 지난달 27일에는 롯데케미칼의 2조원 규모 회사채에 6조원 이상 가치를 지닌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은행권 보증을 추가한다고 발표했다. 이튿날(28일)에는 대폭 물갈이 인사와 기관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도 나섰다.
롯데가 현재 100조원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처럼 적극적으로 시장에 대응하는 것은 최악의 경우 투자심리가 갑자기 얼어붙어 자금 흐름이 일시적으로 막히는 돈맥경화(자금경색) 사태 발생을 막기 위한 것이다.
롯데는 실제로는 유동성에 문제가 없으나 시장의 불안감을 조기에 잠재우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회사채와 주식 투자를 꺼리고 단기차입금 만기 연장이나 리파이낸싱(재융자)에 제동이 걸리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소문에 사고파는 게 투자자와 시장의 속성"이라며 "롯데가 자칫 대응 타이밍을 놓치면 헛소문으로 시작해 진짜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롯데 주요 계열사들은 지난 28일 개최한 기관투자자 대상 기업설명회에서 신용보강과 저수익 자산 매각과 효율화, 부동산 자산 재평가, 부채비율 축소 방안 등을 설명하며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일단 롯데케미칼이 오는 19일 개최할 예정인 사채권자 집회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는 2조450억원 규모의 회사채 신용도를 보강하기 위해 6조원 이상의 가치가 있는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은행 보증을 받기로 했다. 이 회사채를 집회 이후 법원 허가를 받아 내년 1월 14일까지 보증사채로 전환하고 사채권자들과 협의해 재무 특약 사항을 삭제할 예정이다.
시장 관계자는 "신용을 보강해 회사채를 보증사채로 전환하고 채권자들이 당장 상환 요청에 나서지 않으면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8년 12월 롯데그룹, 인도네시아 유화단지 기공식
[ 자료사진. 롯데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아울러 롯데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룹 사업구조 개편과 신사업 추진에 더 박차를 가할 것으로 전해졌다.
롯데는 본래 유통업이 주력이었다. 신동빈 회장이 종합그룹을 꿈꾸며 2016년 3조원을 투입해 화학부문을 그룹의 핵심 축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 지난 2021년 그룹에서 화학군 매출 비중이 32.6%로 유통군(27.7%)을 넘어서며 그룹의 축으로 올라서는 듯했다. 그러나 석유화학업계가 중국의 설비 증설로 인한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침체로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지난해 사업군별 비중을 보면 화학군이 30.1%로 낮아졌고 유통군 26.6%, 건설·렌탈·인프라군 24.7%, 식품군 12.2%, 호텔군 6.4% 순으로 집계됐다.
연도총매출유통군화학군식품군호텔군건설·렌탈·인프라군202174.5조원27.7%32.6%11.0%7.4%21.3%202284.8조원25.5%33.8%11.0%7.9%21.8%202379.2조원26.6%30.1%12.2%6.4%24.7%
롯데그룹 관계자는 에 "사업 개편을 통해 화학 사업군을 고부가 사업 중심으로 전환하고, 식품과 유통 사업군은 성장이 유망한 해외 신시장 개척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롯데케미칼은 현재 60% 이상을 차지하는 기초화학 포트폴리오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하로 줄이고, 첨단소재와 정밀화학, 전지소재, 수소에너지 등의 사업 비중을 확대하기로 했다.
'에셋라이트' 전략에 따라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롯데우베합성고무(LUSR) 청산과 해외법인 지분 매각을 통해 1조4천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또 공장 가동 최적화와 원가절감을 위한 '오퍼레이셔널 엑셀런스'(Operational Excellence) 프로젝트를 상반기 여수 공장에 이어 하반기 대산 공장까지 확대해 재무 건전성 확보에 힘쓰고 있다.
식품과 유통 사업군은 해외 시장 개척에 적극 나선다.
식품에서 한일 롯데는 2035년까지 빼빼로를 '글로벌 톱10·아시아 넘버원' 브랜드로 키운다는 목표 아래 양사가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유통 사업군은 베트남의 롯데몰 웨스트레이크 하노이와 같은 복합 쇼핑몰 추가 출점과 PB(자체 브랜드) 상품 수출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롯데그룹은 4대 신성장 사업으로 제시한 ▲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 전기차 충전 인프라 ▲ 2차전지 소재 ▲ 롯데이노베이트의 메타버스 플랫폼 칼리버스 육성 등의 구체적인 목표도 세웠다.
신동빈 "한·일 롯데, 매출 1조원 브랜드 만들자…빼빼로부터"
[롯데그룹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