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로 일군 성장…신간 '투기 자본주의'
기사 작성일 : 2024-12-05 15:00:15

월가


[AP=]

송광호 기자 = 1970년대는 역동의 시대였다. 68혁명의 여진이 여전했고, 사회적 해방과 성적 해방 운동도 활발했다. 그런 가운데 석유파동과 높은 실업률로 사회는 술렁였고, 공산주의를 둘러싼 논쟁도 첨예했다.

그런 거시적 논쟁 속에서 사소한 법안 하나가 처리됐다. 1974년 9월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이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을 공포한 것이다. 대중적인 항의 표현도 지적 논쟁도 없는, 행정부가 발의한 일반 조직법에 불과했다.

법은 "천재는 아니지만 선의를 가진 것으로 유명한" 포드의 성품처럼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다. 기업에서 연기금을 분리해 일종의 금융기관인 '연금급여보증공사'를 설립하고 기업 연금이 파산하더라도 노동자들이 일정한 금액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의 격언에 따라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라는 내용도 법조문에 실렸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연금은 다양한 기업들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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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선의가 무조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피에르이브 고메즈 프랑스 EM리옹 경영대 교수는 신간 '투기 자본주의'(민음사)에서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이 오늘날 성행하는 투기 자본주의의 모태가 됐을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책에 따르면 미국이 '종업원퇴직소득보장법'을 도입하자, 영국,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스위스, 일본 등 여러 국가도 '연금의 자본화 시스템'을 구축하며 미국의 행보를 따라갔다. 이에 따라 연금의 상당 규모가 지속해서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예를 들어 1970년대 프랑스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불과했던 파리 증권거래소 시가총액은 2018년 GDP의 110%까지 늘었다. 주식 시장뿐 아니다. 주식시장과 기업 내 생산과 노동이 동기화되면서 투기 자본주의 정신이 경제·사회 전반으로 퍼졌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투기 자본주의의 핵심은 '빚투'(빚내서 투자)다.


책 표지 이미지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투기의 논리란 미래의 경제 상황이 현재와 너무 달라서 사물의 가치가 근본적으로 바뀌리라 기대하는 것이다. 미래의 경제가 그런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짊어진 부채를 흡수할 것이다."

"부채가 미래로 흡수되는" 대표적 사례가 빚을 내 빌딩을 짓는 것이다. 대출받아 건물을 짓는 투자자들은 추후 건물의 미래 가치가 부채 규모를 상회하리라 믿으며 건축에 나선다.

이런 투기 자본주의의 약속은 거의 반세기 동안 금융경제와 실물경제, 기업 운영과 노동, 나아가 사회 전체에 뿌리내렸다. 그 과정에서 개미투자자가 '개미자본가'가 되는 등 성장과 번영의 일부가 실현됐지만, 약속은 누적되고 부채는 막대한 규모로 불어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미래는 빛나지 않고 비극도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우리는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진식 옮김. 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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