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석 韓원폭피해자 "핵은 공멸"
기사 작성일 : 2024-12-09 08:00:58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석하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오슬로= 김지연 특파원 = 오는 10일(현지시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초청받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 정원술(왼쪽)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과 원폭 피해 2세인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회장이 8일 오후 노르웨이 오슬로의 그랜드호텔에서 와 인터뷰한 뒤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12.9

(오슬로= 김지연 특파원 = "노벨평화상 수상은 원자폭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2045년 원폭 100년이 되기 전 핵무기 '제로(0)'의 지구를 만드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는 10일(현지시간) 열리는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석을 위해 노르웨이 오슬로를 찾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 정원술(81)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과 원폭 피해 2세 이태재(65) 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회장은 시상식에 초청받은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이들은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니혼히단쿄'(일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의 대표단에 포함됐다. 대표단 31명 중 한국인은 이들 둘뿐이다.

8일 오슬로 그랜드호텔에서 와 만난 정 회장은 이번 시상식 참석을 계기로 세계가 아직도 잘 모르는 한국인의 피해 실상을 알리고 핵 반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겠다고 했다.

특히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큰 전쟁이 이어지고 핵 위협이 가시지 않는 시기에 원폭 피해의 참상을 알려온 단체에 노벨평화상이 돌아간 데 주목했다.

러시아가 최근 우크라이나에 발사한 신형 극초음속 중거리탄도미사일 '오레시니크'(개암나무)에는 핵탄두를 여러 개 탑재할 수 있는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체'(MIRV) 기술이 적용됐다는 분석이 나왔는데, 정 회장은 이런 일들을 우려했다.

그는 "핵은 보유해서도, 개발해서도, 사용해서도 안 된다"며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은 지금 신형 핵 무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회장도 "핵보유국들부터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참여하고 핵우산 속에 있는 한국과 일본도 가입함으로써 핵이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TPNW는 핵무기 관련 모든 활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조약으로 2022년 발효됐다. 그러나 전 세계는 핵 금지는 물론이고 핵 군축도 갈 길이 멀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앞에서 자체 핵무장론은 잊을 만하면 제기된다.

이 회장은 "핵은 공멸이고, 인류는 핵과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에 인식해야 한다"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우리가 노력해야지 다 같이 핵을 갖겠다는 자세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따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는 약 74만명이고 그중 한국인은 약 10만명으로 추산된다.


노벨평화상 시상식 참석하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오슬로= 김지연 특파원 = 오는 10일(현지시간)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초청받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 정원술(왼쪽)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과 원폭 피해 2세인 이태재 한국원폭피해자 후손회 회장이 8일 오후 노르웨이 오슬로의 그랜드호텔에서 와 인터뷰한 뒤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12.9

경남 합천에 사는 정 회장은 1943년 9월 히로시마에서 일본으로 강제 동원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만 2세를 앞둔 1945년 8월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피폭됐다.

원폭 투하 당시 굉음으로 모친은 청각을 잃었고 부친도 늘 몸이 아팠다고 한다. 정 회장도 기관지나 소화기 관련 질병을 달고 살았다.

정 회장은 "부친은 당시 온몸에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강물에 뛰어드는 모습을 회상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곤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머릿속에 흉악한 피의 강물이었던 그 강을 작년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가보니 대조적으로 참 평온해 보였다. 강물이 돌아가신 영혼들의 평화 메시지를 담아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한국인 원폭 피해자 추모시설 건립을 중앙에서 지원해 조속히 추진하는 등 정부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이 회장은 자신이 피폭 2세라는 사실을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 지난 1990년대 말에야 알게 됐다. 나가사키 미쓰비시 군수공장으로 징용을 갔다가 원폭을 겪은 부친이 이를 자식에게 말하지 않은 건 사회적 편견에만 노출될 뿐 득 될 것은 하나도 없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원폭 당시 근무 교대로 큰 피해는 피했으나 한 달여 시내 복구, 공장 정리 작업 등을 했던 부친은 평생 천식과 피부질환을 앓았다. 이 회장도 어릴 때 병약했고 빈혈, 코피가 심했다. 2005년엔 위암이 발견돼 수술받았고, 지금도 관절 계통이 약하다고 한다.

이 회장은 "히단쿄 조사에 의하면 일본 원폭 생존자는 10만2천명인데 한국 생존자는 1천600여 명에 불과하다"며 한국 원폭 피해 실태를 국가 차원에서 들여다보고,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통해 원폭 피해 2, 3세에게도 지원이 닿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일본에 대해서는 "원폭으로 전범 국가에서 피해 국가로 변모해서는 과거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지 않고 있다. 직시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미국에 대해서도 원폭 투하에 대한 반성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3년 12월 10일 오슬로시청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시상식


[EPA 자료사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