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위 나눔 안내문
이승연 기자 = 지난 9일 국회 앞에 위치한 한 카페 출입문에 '이어질 집회에 나눔 지원 계속하겠다'는 안내 문구가 적혀있다. 해당 카페는 지난 7일 촛불시위 참가자들에게 음료와 떡을 제공했다. 2024.12.10.
이승연 기자 = "앳된 목소리로 전화 와서 가장 저렴한 떡 가격을 묻더니 10개만이라도 선결제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9일 여의도 국회 앞 카페 '케이팥'에서 근무하는 40대 장보라 씨는 이틀 전 열렸던 시위 직전에 걸려 온 선결제 주문 전화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장씨는 "그 친구는 3만9천원을 보내줬고, 많게는 50만∼100만원 이상 결제하시는 분들도 있었다"며 "세어보진 않았지만 40∼50명 정도 선결제를 해주셨다"고 돌아봤다.
지난 7일 국회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린 가운데 '선결제'가 시위의 새로운 문화로 떠올랐다.
'선결제'는 상품 수령자를 정해 놓지 않는 주문 방식이다. 결제자는 전화로 주문한 뒤 비용을 가게 계좌로 입금 하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결제한 매장을 공유한다. 시위 참여자들은 SNS를 보고 가게를 찾아가 이렇게 선결제 된 음료 혹은 간식을 무료로 받아갈 수 있다.
7일 밀려드는 시위 인파에 급히 매장에 투입됐던 장씨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말새 재고가 모두 소진돼 이날 카페 오픈 시각을 2시간가량 늦췄다고도 했다.
장씨에 따르면 선결제를 요청한 고객 대다수는 해외 및 지방에 거주하는 이들이었다.
"한 분이 선결제 소식을 알리면 그 지인들이 선결제하는 연쇄 반응이 일어났어요. 전화를 받고 일하다가 사장님과 함께 울컥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장씨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카페를 찾은 단골손님 60대 김모 씨는 친구들과 함께 촛불시위를 앞두고 총 60만원을 선결제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광주 민주화운동 때도 시민들이 주먹밥을 나눠주지 않았나"라며 미소 지었다.
카페 조리대에 붙어있는 선결제 주문 내역 영수증들
이승연 기자 = 지난 9일 국회 앞에 위치한 한 카페 조리대에 수십개의 선결제 주문내역 영수증이 걸려있다. 2024.12.10.
장씨가 근무하는 가게는 선결제 물량이 소진된 뒤에도 무료 나눔을 이어갔다.
"시위하러 온 손님 중 어린 친구들이 많았어요. 일을 하는 제 모습이 부끄러울 지경이었죠. 나중에 사장님께서 시위자들에게 떡 혹은 핫팩을 가져갈 수 있게끔 하자며 저렇게 팻말을 써 붙였습니다."
장씨가 가리킨 곳에는 '닉네임 상관 없이 1개씩만 부탁드려요'라는 안내문과 함께 핫팩, 떡, 과일, 과자 등이 쌓여있었다. 결제자들이 다양한 닉네임으로 선결제를 하는데, 어떤 닉네임을 보고 온 손님이든 가게에서 '덤'을 줬다는 얘기다.
이렇게 나눠준 떡값만 150만∼200만원으로 추정된다고 장씨는 말했다. 선결제 주문량이 많았지만 이렇듯 무료 나눔으로 이 카페는 사실상 손해를 본 셈이다.
장씨는 "어린 친구들이 사장님한테 고맙다며 답례로 다음날 집에서 핫팩이나 과자를 가져와 저렇게 물품이 많아졌다"며 "청년들은 딱 봐도 어린애들이 가게에 있으니까 무료로 가져가는 대신 '그냥 결제해서 먹겠다'고 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주 시위에도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라며 "정치인들이 아이들을 봐서라도 이 상황을 얼른 끝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시위 참가자들을 위한 '무료나눔'
이승연 기자 = 지난 9일 국회 앞에 위치한 한 카페에 촛불시위 참여자들을 위한 무료나눔 물품들이 놓여있다. 카페 사장님이 시작한 무료나눔은 이후 집회참가자들이 기부한 마스크, 과자들로 가득 채워졌다. 2024.12.10.
선결제된 음료를 시민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봉사를 자처한 이들도 있었다.
카페 '고망고'를 운영하는 50대 서은진 씨는 "저희가 만든 음료를 전달받아 직접 시민들에게 나눠주고 사진을 찍어 공유해주는 분이 있었다"며 "추위에도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 고생하셨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새 서씨의 가게에는 약 15명이 선결제를 했다.
서씨는 "대부분 100잔 이상이었고 최대 1천500잔을 결제한 사람도 있었다"며 "'시위에 나가 추위에 떠는 이들에게 온기를 전해달라'는 요청사항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정신없이 일하던 중 서씨는 선결제자들이 남긴 닉네임 중 다수가 아이돌 이름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이 젊은 친구들에게도 큰 울림이었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젊은이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이렇게 성숙하고 평화롭게 표현할 줄 아는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서씨는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추위 속에서 싸우는 걸 택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저도 많이 배웠다"며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악화한 경기 속에서 이번 시위를 통해 예기치 못한 '특수'를 봤지만 서씨는 달갑지 않다고 했다.
"이런 일로 매출이 오르는 건 가슴이 아픕니다. 좋은 공연이나 축제가 열려서 매출이 오르는 게 기쁘죠."
"시위 참여자분들, 말씀주세요!"
이승연 기자 = 지난 9일 국회 앞 카페 창문에 선결제된 음료 주문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 문구가 적혀있다. 2024.12.10.
국회 앞 또 다른 카페 '남대문 커피'를 운영하는 조호연(42) 씨도 기억에 남는 선결제자를 떠올리며 '앳된 목소리'를 꼽았다.
"'고등학생이라 얼마 못한다'며 수줍게 5만원을 선결제한 학생이었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큰 감동을 받았어요."
조씨의 가게에도 지난 주말새 약 15명이 선결제를 했다. 적게는 3만∼5만원, 많게는 60만∼80만원까지 액수는 다양했다. 역시 지방 혹은 해외에 거주하는 이들의 선결제 요청이 많았다.
조씨는 "여건상 직접 시위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로 보였다"면서 "SNS를 통해 선결제 내용을 공유받지 못한 어르신들에게는 (가게에서) 알아서 선결제 커피를 내어달라고 요청하거나 물량이 소진된 만큼 채울 테니 연락을 달라고 하는 분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정상화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