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미소와 함께
(스톡홀름= 김도훈 기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린케뷔 도서관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기념책자 낭독회에서 현지 다문화 학교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12.11
(스톡홀름= 정빛나 특파원 황재하 기자 = '내가 만약 토마토가 된다면 아주 맛없는 토마토가 될 거야 / 아무도 날 먹지 않게 / 아무도 나를 토마토수프에 넣을 수 없게 나무 꼭대기로 올라갈 거야.'
4학년인 애민(10) 군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마이크를 꼭 쥐고 창작시를 낭독하자 한강(54)은 만면에 '엄마 미소'를 지었다.
애민 군은 또래 학생들과 함께 한강의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를 읽은 뒤 시를 썼다고 설명했다.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링케뷔에 있는 도서관에서는 한강이 10∼15세 학생 100여명과 만나 문학을 주제로 교감하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됐다.
'노벨문학상 기념책자 낭독회'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다문화 가정이 많은 스톡홀름 링케뷔와 텐스타 등 2개 지역 학생을 대상으로 여는 36년 전통의 행사다.
학생들은 10월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부터 '흰',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내 여자의 열매' 등 한강의 소설 4권의 발췌본 혹은 전체를 읽고 토론을 하는 등 두 달간 '한강 공부'를 했다고 한다.
초상화와 기념책자 받은 한강 작가
(스톡홀름= 김도훈 기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린케뷔 도서관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기념책자 낭독회에서 초상화와 기념 책자를 선물로 받고 있다. 2024.12.11
사용되는 모국어가 마흔 가지에 달할 만큼 다양한 배경의 이 학교 학생들은 각기 한강의 작품을 읽고 느낀 점을 표현한 시·그림·노래 등을 한강과 나눴다.
한 학생이 '흰'을 읽고 '내 인생을 달랐을 거다'라는 주제로 써봤다는 글귀를 낭독하자 한강은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귀 기울여 들었다.
'4살 때 아빠가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달랐을 거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가 홀로 됐기 때문이다. 엄마의 앞에는 무수한 위기가 닥쳤지만, 엄마는 잘 견뎌내셨고….'
학생들 발표에 박수 보내는 한강 작가
(스톡홀름= 김도훈 기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린케뷔 도서관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기념책자 낭독회에서 현지 다문화 학교 학생들의 시 낭송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2024.12.11
한강은 이날 약 40여분간 도서관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여러 그룹의 학생들과 대화도 나눴다.
가장 어린 10세 학생들과 둘러앉았을 때는 '노벨상 타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책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인가요?' 와 같은 질문 세례를 받기도 했다.
사피나(10) 양은 "작가님이 제게 꿈을 물어보셔서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이라고 말했어요"라며 "작가님은 책을 쓰는 데 7년이나 걸린 적도 있다네요.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영상 기사한강, 다문화지역 학생들과 만나
(스톡홀름= 정빛나 특파원 =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링케뷔에 있는 한 도서관을 찾아 어린이들과 대화하고 있다. 2024.12.11
'소년이 온다'가 가장 좋았다는 타니샤(15) 양은 "작가님이 나랑 비슷한 나이였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셨다고 말해줬다"며 "고학년이 돼 한동안 독서량이 줄어들었는데 나도 다시 책을 많이 읽고 직접 써보고 싶다"고 했다.
한강은 학생들에게 "나의 작품을 많이 읽고 대화를 나누고, 경험을 끌어내 나눠줘 정말 감동했다"며 "오늘 이 자리는 앞으로 살면서 절대 잊지 못할 특별한 기억이 될 것"이라고 감사를 전했다.
도서관 방명록에는 "이들을 이끌어준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고 적었다.
한강은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한 간담회에서도 약 일주일 간 진행된 '노벨 주간' 여러 부대행사 가운데 이날 도서관 방문을 가장 인상 깊은 순간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열살 아이의 '토마토' 시를 언급하면서 "'내 여자의 열매'는 '채식주의자'의 시작이 됐다고 할 수 있는 소설인데, (작품속) 여자가 정말로 식물이 되는 내용"이라며 "'나를 토마토 수프에 넣지 말아달라'는 시를 써서 너무 재미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가운데 하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가 남긴 방명록
(스톡홀름= 정빛나 특파원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린케뷔 도서관에서 현지 다문화 학교 학생들과의 만남을 가진 뒤 남긴 방명록. 한 작가는 방명록에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학생들이 쓴 시와 함께 부른 노래에 감동받았습니다"라며 학생들과 도서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남겼다. 2024.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