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달동네 찾은 '연탄 산타'…온정에 추위도 녹았다
기사 작성일 : 2024-12-24 16:00:35

연탄 배달하는 산타들


서대연 기자 =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연탄은행 주최로 열린 '성탄 연탄데이' 연탄나눔 행사에서 산타모자를 쓴 참가자들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2024.12.24

한지은 기자 =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 영하권에 가까운 날씨에도 외투를 벗어 던진 봉사자들이 인왕산 자락을 일렬로 나란히 섰다.

"왼쪽, 오른쪽! 왼쪽, 오른쪽!"

봉사자 100여명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진 건 연탄. 누군가에게는 까마득한 추억의 난방용품이지만, 달동네에 사는 에너지 취약계층엔 겨울나기 필수품이다.

밥상공동체·연탄은행은 이날 개미마을 38가구에 연탄 3천600장과 난방유 400ℓ를 나누는 봉사를 진행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봉사자들도 팔을 걷고 마을 끝자락까지 온기를 배달했다.


즐거운 연탄나눔


서대연 기자 =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연탄은행 주최로 열린 '성탄 연탄데이' 연탄나눔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2024.12.24

성탄절을 기념하고자 산타와 루돌프 복장을 한 봉사자들은 스스로를 '연차 산타', '꼬마 산타', '커플 루돌프' 등으로 소개하며 밝은 표정으로 연탄을 들었다.

기자도 목장갑에 토시를 착용하고 봉사 대열에 동참했다. 장당 3.65㎏ 무게의 연탄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지게 위에 연탄 6장을 올린 채 구불구불 꼭대기 집을 향해 걷는데, 길가에 녹지 않은 눈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생판 처음 보지만 같이 땀 흘린다는 사실만으로 연대감이 생긴 봉사자들은 "조심하세요", "힘내세요"라고 말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연탄 싣고 마을 오르는 기자


[촬영 서대연]

이철호(50)씨는 "어릴 때 형편이 좋지 않아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그때 받은 도움을 갚는다는 마음으로 15년 넘게 연탄 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님과 함께 봉사한 함지흔(11)양은 "오늘은 올해 중 가장 뿌듯한 날"이라며 활짝 웃었다.

가쁜 숨을 쉬면서도 밝게 웃는 봉사자들과 달리 대문 옆에 차곡차곡 쌓이는 연탄을 지켜보던 마을 어르신들의 표정은 복잡했다.

박상기(83) 할머니는 "마을에 모인 봉사자들을 보고 '내가 젊은 사람들을 고생시키는구나' 생각이 들어 집에 못 들어가고 산에 숨어 한참 울었던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박 할머니는 "매년 봉사자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 젊은 사람들이 살기 힘드니까 그렇게 되는 거 아니겠나"라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연탄은행, 성탄절 앞두고 연탄나눔


서대연 기자 =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에서 연탄은행 주최로 열린 '성탄 연탄데이' 연탄나눔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2024.12.24

밥상공동체·연탄은행은 올해 연탄 300만장 기부를 목표로 했지만, 연말 후원이 감소하면서 250만장밖에 달성하지 못한 상태다.

특히 지난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12월 후원이 예년과 비교해 급감했다고 한다.

연탄은행 관계자는 "매년 울릉도까지 연탄을 전달하는데, 올해는 후원이 부족해 울릉도에 갈 연탄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 이웃이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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