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 만에 폐역한 화본역
(대구= 박세진 기자 = 27일 오후 대구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이 폐역된 뒤 무료 개방돼 있다. 2024.12.27
(대구= 박세진 기자 = "옛날에 버스나 자동차가 안 다닐 때는 대구로 가려고 화본역에서 기차를 탔지…"
지난 27일 오후 대구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에서 만난 주민 신모(84·여)씨는 폐역한 화본역의 흥망성쇠를 지켜봤다고 했다.
신씨는 "50여년 전에 우리 첫째가 8살일 때만 해도 이 주변에는 도로도 제대로 깔리지 않았다"며 "서울이나 대구, 부산에 가려면 화본역에서 기차를 타야 했기에 늘 사람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신씨는 '화본역에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는 기자의 말을 듣고 "타는 사람이 없으니깐…"이라며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중앙선 단선 철도역이자 간이역이었던 화본역은 행정구역상 경북도였던 1938년 2월 1일 운행을 시작해 86년 만인 지난 20일 중앙선 철도 복선 전철화가 완료되면서 폐역됐다.
화본역에는 이용객이 줄어든 이후 폐역될 때까지 하루 상하행선 3차례씩 무궁화호가 정차하기도 했다.
화본역에 남겨진 선로
(대구= 박세진 기자 = 27일 오후 대구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 선로가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돼 있다. 2024.12.27
이날 화본역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군위군은 코레일과 철도공단으로부터 화본역을 임차해 당분간 무료 개방하고 있다. 개방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앞서 코레일은 입장료 1천원을 받아 운영비로 활용해왔다.
화본역사에서 만난 군 관계자는 "주말에는 방문객들이 계속 찾아온다"며 "열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철길을 걷거나 사진을 찍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여러 영화와 TV 프로그램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시민들은 폐역 여부와 무관하게 화본역을 찾은 모습이었다.
한 60대 방문객은 "예전에는 기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며 "역사 건물은 옛날 그대로인 거 같다. 폐역된 줄은 몰랐는데 잘 보존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군위군과 코레일은 지난 2011년 화본역의 옛 모습(1936년)을 복원했고 온라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화본역에 남겨진 선로
(대구= 박세진 기자 = 27일 오후 대구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 선로가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돼 있다. 2024.12.27
화본역에는 옛 증기 열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급수탑'이 그대로 남겨져 개방돼 있다. 외관은 세월의 흐름만큼 그간 다녀간 방문객들의 낙서로 가득했다.
열차가 달리던 선로와 표지판도 그대로 남겨져 있어 정취를 더했다.
친구와 함께 화본역을 찾은 20대 김씨는 "KTX 역이 아닌 일반 기차역은 이제 찾을 일이 거의 없는데 이런 공간이 남겨져 있다는 게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다른 한 방문객은 "차량을 타고 왔는데 화본역 진입로에 별다른 표지판이 없어서 여기가 맞는지 헷갈려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며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이 더 보강돼야 할 거 같다"고 조언했다.
폐역된 화본역, 남겨진 역사 건물
(대구= 박세진 기자 = 27일 오후 대구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이 폐역한 뒤 무료 개방된 가운데 역사 건물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2024.12.27
주변 상인들도 화본역 폐역에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군위군이 관광 자원으로 잘 활용해주길 바랐다.
화본역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한 상인은 "애당초 화본역에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방문하는 분들이 많아서 폐역이 당장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 상인은 "앞으로가 중요할 것 같다"며 "군위군에서 폐역으로만 방치해두지 말고 계속 활용해서 관광 명소로 더 키워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군위군은 화본역사 건물과 철도 구간에 간이역을 테마로 한 관광 콘텐츠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진열 군위군수는 "화본역 관련 콘텐츠를 보완해 화본역을 군위군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헷갈리는 화본역 진입로
(대구= 박세진 기자 = 27일 오후 대구 군위군 산성면 화본역 진입로 모습. 2024.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