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 운하 찾은 관광객
(콜론 AFP= 28일(현지시간) 파나마 운하에서 관광객이 선박 통항(통행)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2024.12.31
(멕시코시티= 이재림 특파원 = 파나마가 미국으로부터 파나마 운하 운영권을 넘겨받은 지 31일(현지시간) 25주년을 맞는다.
한 차례 확장과 함께 성공적으로 운영되며 전 세계 해상무역 핵심 통로로 자리한 파나마 운하는 '통제권 환수 가능성'을 들고나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위협 앞에서 앞날을 예측하기 힘든 불확실성을 마주하고 있다.
친미(親美) 성향으로 분류되는 파나마 정부가 "단 1㎡도 내줄 수 없다"며 반발하는 가운데 경우에 따라선 트럼프 2기 정부 이후 파나마 운하를 둘러싼 미국과 파나마 간 외교 분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999년 12월 14일 파나마 운하 이양 조인식 참석한 카터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와 모스코소 전 파나마 대통령
[AF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1903년·1914년·1977년·1999년'…운하 역사 중요 변곡점
30일 파나마 정부와 파나마운하청(ACP) 홈페이지 설명을 보면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지름길인 파나마 운하 건설의 역사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곳을 점령하고 있던 스페인이 운하 개발을 타진했다가 기술적 어려움으로 계획을 접은 게 시발이다.
이후 프랑스가 1878년 당시 파나마 지역을 관할하던 콜롬비아와 운하 건설 계약을 한 뒤 1882년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했지만, 전염병과 사고 등으로 근로자 2만5천명 이상이 숨지는 등 난항을 겪다가 미국으로 바통을 넘기게 된다.
미국은 1903년 헤이-부나우 바리야 조약(Tratado Hay-Bunau Varilla)을 통해 신생 독립국이었던 파나마로부터 파나마 운하 지역 운영·통제권을 영구 임대한 뒤 공병대를 동원해 10여년 만에 마침내 운하를 완공했다.
1914년 8월 15일 증기선 안콘 호가 처음으로 운하를 통항(통행)하면서 정식 개통됐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에 미군을 주둔시키고 경제·군사적 요충지로 활용했는데, 운영 과정에서 파나마 현지 주민과 크고 작은 마찰이 이어졌다.
결국 1964년 1월 파나마 학생 및 군중과 운하 주둔 미군 간 유혈사태로 23명이 사망하면서 갈등이 고조됐고, 이는 1977년 토리호스-카터 조약 체결로 이어졌다.
전날 별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오마르 토리호스 전 파나마 대통령 간 협상의 산물인 이 조약은 파나마 운하 관련 이전 조약을 폐지하는 한편 운하 통과 선박 규제와 운하 관리·운영·개선·보호·방어 등 운하 관리권을 파나마 정부에 완전히 넘기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를 계기로 미군은 파나마 운하에서 철수했고, 1999년 12월 31일 정오를 기해 파나마 정부가 운하를 전면 통제하게 됐다.
파나마 운하 아구아클라라 갑문 통과하는 선박
[콜론 AFP=. 재판매 및 DB 금지]
◇ 파나마 경제 근간…이용 선박 선적 '한국 4위'
파나마 운하는 말 그대로 440만명 안팎 인구의 파나마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다.
파나마운하청에서 내놓은 2023년 연례 보고서를 보면 파나마 운하 전체 매출은 49억6천800만 파나마 발보아(7조2천억원 상당·1 파나마 발보아=1달러)로, 파나마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1%다.
올해는 가뭄으로 선박 통항 대수가 줄었음에도 지난해보다 많은 50억 파나마 발보아 상당 매출을 기록한 것으로 ACP는 보고 있다.
2024 회계연도(2023년 10월∼2024년 9월) 기준 미국 선적 선박은 1억5천706만t(톤)의 화물을 실어 나른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4천504만t), 일본(3천373만t), 한국(1천966만t) 선적이 그 뒤를 이었다.
이는 56억 달러를 투입한 9년간의 공사 끝에 2016년 마무리 지은 운하 확장의 영향이 크다는 게 파나마 당국 판단이다.
기존 운하에서 폭 32m대 파나막스(Panamax) 선박만 통행할 수 있었다면, 현재는 폭 49m로 확장한 1만4천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화물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네오파나막스(Neo-panamax) 선박도 지나갈 수 있다.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최근 정례 주간 기자회견에서 "운하 확장으로 선박 운송 능력 향상을 끌어내면서 세계 경제에 이바지하고 국가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됐다"며, 미국으로부터 운영권을 넘겨받은 이후의 '성과'에 방점을 두기도 했다.
중간에 해발 26m 구간을 지나는 파나마 운하는 개폐식 갑문을 이용해 수위를 동일하게 만든 후 선박을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수위를 조절해 배를 엘리베이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독특한 형태를 직접 눈으로 보려는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당국은 부가적 관광 수입도 올리고 있다.
24일(현지시간) 트럼프 얼굴 사진 현수막 찢고 불지르는 파나마 시위대
[파나마시티 AFP=. 재판매 및 DB 금지]
◇ 트럼프의 '도발'…사반세기 만에 최대 위기
미국과 파나마 간 '우호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파나마 운하가 최근 느닷없이 분쟁의 씨앗으로 주목받게 된 건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의 언사 때문이다.
트럼프는 정치 행사에서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사용하며 받는 대우가 "불공평"하다면서 통행료 수준에 불만을 드러낸 데 이어 "나는 운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관계망서비스 트루스소셜에 "파나마 운하를 정성스레, 하지만 불법으로 운영하는 중국의 훌륭한 군인들"에게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며, 운하에 중국군이 배치돼 있다고 암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파나마 대통령은 '1㎡도 내줄 수 없다' ,'반환 요구는 역사적 무지에서 나오는 발언', '중국군은 물론이고 외국군은 전무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물리노 파나마 대통령은 또 CNN스페인어판 인터뷰 등에서 "필요한 경우 우리는 국제법적 판단을 받기 위해 (미국을) 제소할 것"이라며 "아무도 파나마에 운하를 선물로 준 적이 없으며, 우리가 우리 영토를 돈 주고 산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별도로 파나마 정부는 2030년까지 최소 85억 달러를 투자해 운하 인프라 개선을 비롯한 물류 부문 경쟁력 강화에 나선다는 방침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