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親서방 대통령 승리…"헤즈볼라·이란 위상 약화"
기사 작성일 : 2025-01-10 12:01:00

레바논 의회서 선서하는 조제프 아운 대통령


[EPA/WAEL HAMZEH=]

김용래 기자 = 이스라엘과 이슬람 무장정파 헤즈볼라 간 오랜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신음해온 레바논이 친서방 성향의 새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이란의 지원을 받아온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상당히 퇴조했음을 보여준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레바논 의회가 9일(현지시간) 새 대통령으로 선출한 조제프 아운(61)은 직전까지 군 참모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헤즈볼라와 가까운 관계였던 미셸 아운 전 대통령이 2022년 10월 6년의 임기를 마친 뒤 정파 간 분열과 갈등으로 2년여간 공석이었던 대통령이 됐다.

미국의 지지를 받아온 아운 대통령은 취임 선서 뒤 연설에서 정부군이 무기를 독점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임시 휴전을 이어가고 추가 충돌을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아운의 대통령 당선 직후 성명을 내고 축하하며 지원을 약속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아운의 당선이 "레바논의 개혁과 주권, 번영의 회복"을 위한 길을 개척했다며 반겼다.

2017년 3월부터 레바논군을 이끌어온 조제프 아운은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한 2023년 10월 이후 레바논 남부에서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군의 충돌 상황을 관리해왔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최근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타격을 입은 헤즈볼라의 레바논 내 영향력이 상당히 약해졌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미국의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평가했다.

로이터통신도 최근 전쟁으로 헤즈볼라가 타격을 입고 시리아 바샤르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반군의 공세로 패퇴하는 등 이란을 중심으로 한 시아파 세력이 약해진 반면에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의 영향력이 부활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레바논 내 헤즈볼라의 위상 약화 징후는 여러 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이번 대통령 간접선거에서 헤즈볼라가 선호했던 후보 술레이만 프랑지에는 의회의 대통령 선출을 위한 표결 전 사퇴하고 조제프 아운 지지를 선언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레바논의 헤즈볼라 지지 활동가 3명이 한 방송사로부터 명예훼손과 협박 혐의로 고발당한 뒤 구금되기도 했다. 헤즈볼라 소속 의원들은 이 활동가들을 석방하라며 사법당국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최근엔 이란의 민항기로 베이루트에 도착한 한 승객이 헤즈볼라 자금 운반의 의혹을 받고 레바논 당국에 의해 조사를 받기도 했다.


조제프 아운의 대통령 당선 축하하는 레바논인들


[로이터=]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레바논에서 이런 모습들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헤즈볼라 지지 기반에서도 헤즈볼라 지도부에 대한 불만의 징후가 감지된다.

유권자 일부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파괴된 가옥을 재건하라며 헤즈볼라로부터 받은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내용의 불평을 소셜미디어에 올리기도 했다.

미국의 한 고위 외교 당국자는 WSJ에 "헤즈볼라가 강제적 영향력을 쉽게 버리지는 않겠지만, 그들을 지탱해온 세력들은 꾸준히 힘을 잃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란은 2년 전처럼 지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인이 아니며, 이런 것들이 헤즈볼라에게 연쇄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시리아에서의 상황변화 역시 권위가 떨어진 헤즈볼라를 더 흔드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카네기평화재단의 분석가 림 몸타즈도 "레바논 정파들은 수십년간 이어져 온 시리아-이란의 요구들에서 벗어날 역사적 기회를 맞고 있다"면서 "그렇게 하려면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할 순 없다는 인식과 매우 중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레바논 정파들이) 잘 이해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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