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성멈춘 가자] 탱크 굉음에 흙먼지…휴전발효 목전 여전한 긴장감
기사 작성일 : 2025-01-18 10:00:57

연기 피어오르는 가자지구


(레임= 김동호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에서 바라본 장벽 너머 가자지구에 이스라엘군 포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 2025.1.18

(케렘샬롬·레임·트쿠마= 김동호 특파원 = "쾅, 쾅, 쾅."

휴전 발효를 이틀 앞둔 17일(현지시간) 오후 2시 55분, 가자지구 경계에서 직선거리로 5㎞ 떨어진 이스라엘 남부 레임 지역의 한 추모공원에선 공기를 찢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이 소리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소탕을 위해 맹폭했던 가자지구내 누세이라트, 데이르알발라 방면에서 들려왔다.

근처에 "로켓 위협시 15초 안에 이동하라"고 적힌 방공호가 있었지만 대피하는 방문객은 없었다.

미군 장병을 인솔하던 이스라엘 군인이 다가와 "전투기 공습이 아니라 포병이 사격하는 소리"라는 설명을 남기고 발걸음을 이어갔다. 이 소리는 공원에 머문 40분 남짓한 시간 약 20차례 들렸다.

이날 낮 는 2020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기습했던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직접 찾았다. 하마스는 '알아크사 홍수'라고 이름붙인 이 공격으로 1천200명을 살해하고 251명을 납치해 가자지구 땅굴로 끌고 갔다.

당시 피해가 컸던 나할오즈, 레임, 베에리, 크파르아자 등 키부츠(집단농장)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이 가자지구 경계를 따라 놓인 232번 국도변에 하나씩 스쳤다.


필라델피 회랑 앞 이스라엘 지상군


(케렘샬롬= 김동호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케렘샬롬 국경검문소 인근에 이스라엘쿤 탱크와 장갑차가 집결했다. 2025.1.18

이 길을 타고 남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가자지구 쪽 하늘에 감시용 열기구, 폭격 때문인 듯한 검은 연기 등이 눈에 들어왔다. 교전은 아직 완전히 멈추지 않았다.

도로 반대편에는 이스라엘군 전차수송차량이 빈 트레일러를 끌고 연거푸 북쪽으로 향했다.

국도 끝 케렘샬롬 국경검문소에 도착하니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이집트와 가자 경계에 놓인 약 14㎞ 길이의 완충지대, '필라델피 회랑' 시작 지점에 메르카바 탱크가 흙먼지를 날리며 속속 집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케렘샬롬은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구호품이 가자로 반입되는 주요 통로로, 이스라엘군 지상군은 이곳에서 휴전 발효 이후를 대비하는 듯 보였다.

지난 15일 휴전 협상이 타결됐지만 이스라엘군의 필라델피 회랑 주둔 여부는 여전히 쟁점이다. 하마스가 여기로 무기를 밀수한다고 이스라엘은 의심한다.

다시 차를 돌려 가자 중부에 인접한 레임을 방문했다. 하마스의 기습 공격 때 노바 음악축제가 열리던 이곳에서만 360명이 숨지며 가장 많은 사상자를 기록했다.

유대교 안식일 시작을 불과 2시간여 남둔 시각이었지만 추모 공간으로 꾸며진 이 비극의 현장에 사람들이 쉴틈없이 오갔다.


노바 음악축제 비극 현장


(레임= 김동호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레임 지역의 추모공간. 2023년 10월 7일 노바 음악축제가 열리던 이곳을 하마스가 기습해 360명이 사망했다. 2025.1.18

널찍한 공터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사진, 꽃, 촛대 등이 빼곡히 들어찼고 유대인의 상징 '다윗의 별'이 그려진 이스라엘 국기가 곳곳에 나부꼈다.

방문객들을 모아놓고 열변을 토하던 여행가이드 아미트 무사에이씨는 "그날 내 친구 3명이 죽었다"며 "충격에서 회복한 뒤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외부 사람들에게 '10·7 학살'을 설명하고, 숨진 지인들의 자녀의 학비를 모금하는 등 활동으로 아픔을 극복해왔다.

무사에이씨는 "휴전이 합의됐지만 인질 석방이 시작돼야 할 이번주 일요일 하마스가 또다시 로켓을 쏘며 약속을 어길지 누가 아나"라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국가는 '약속의 땅'이고,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아사프씨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다.

아사프씨는 "이곳에서 너무나 슬픈 일이 벌어졌다"며 "따뜻한 마음으로 모두를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아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어서 왔다"고 말했다.


친구 셋 잃은 이스라엘인


(레임= 김동호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레임 지역의 추모공간에서 아미트 무사에이씨가 하마스 공격에 잃은 친구 셋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2025.1.18

'보복을 멈춰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나'라고 기자가 되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죽을 때는 양말 한 짝도 못 들고 간다, 이 땅의 것에 큰 욕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아들 쇼암이 곁에서 "아빠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라며 미소지었다.

노바 음악축제 현장에서 멀지 않은 트쿠마 마을에는 15개월 전 하마스 공격에 불타고 파괴된 차량 1천560대가 쌓여 있다.

하늘이 점차 석양으로 붉어질 무렵 10여명이 철망 너머로 이곳 '자동차 무덤'을 살피고 있었다.

한 노인에게 '하마스에 피해를 본 지인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내 아들 넷이 군에서 복무했다"며 "수십년간 전쟁을 겪은 이스라엘인 모두가 아픔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 무리의 남성들은 차에서 내린지 몇분도 채 안돼 자리를 떴다. 검은색 옷차림에 땋은 머리를 한 것이 안식일을 지키려 서둘러 귀가하는 정통파 유대교도인 듯했다. 유대교인들은 금요일 일몰부터 토요일 일몰까지인 안식일에 업무와 외부 활동을 엄격히 삼간다.


자동차 무덤


(트쿠마= 김동호 특파원 = 1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남부 트쿠마에 있는 '자동차 무덤'. 2025.1.18

이스라엘군은 이날 성명을 내고 지난 하루 동안 가자 전역에 걸쳐 하마스와 팔레스타인이슬라믹지하드(PIJ) 군사시설 약 50곳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내각은 18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휴전 합의를 승인하면서 가자지구 교전 중단과 이스라엘 인질 석방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휴전은 19일 오후 12시15분에 발효되고, 인질 석방은 같은날 오후 4시에 시작될 전망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