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온다" 생존 외교…러·이란 밀착, EU·멕시코 무역동맹
기사 작성일 : 2025-01-18 14:00:59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 공식 사진[트럼프 인수위 배포]

고동욱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사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국제질서의 격변에 대비하려는 각국 정상의 발걸음도 바빠지고 있다.

반서방 진영의 대표주자인 러시아와 이란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결속을 다지는 사이, 트럼프 1기 시절 격랑을 겪었던 유럽 국가들은 앞마당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마주한 채 복잡한 셈법 속에 접촉면을 넓히는 모양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조약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과 맞서는 러시아와 중동지역 반미세력 '저항의 축'의 배후인 이란이 트럼프 당선인 취임을 사흘 앞두고 군사적·정치적 밀착에 나선 것이다.

러시아는 앞서 지난해 6월 북한과도 포괄적 전략자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했다. 이와 맞물려 북한군이 파병돼 쿠르스크에서 전투에 참여 중이다.

서방 진영의 움직임은 조금 더 복잡하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취임 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를 16일 방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와 '100년 동반자' 조약에 서명했다.

이에 앞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3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통화했고, 14일에는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이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 구이도 크로세토 이탈리아 국방장관도 잇달아 키이우를 방문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 회의적인 트럼프 당선인 취임을 앞두고 유럽의 평화를 위해서는 안보 협력이 이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낸 것으로 해석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타스=]

한편에서 유럽연합(EU)은 17일 미국의 '관세 위협'에 직면한 멕시코와 25년 만의 무역협정 현대화에 합의했다. 2000년 기존 무역협정보다 관세 인하를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취임 후 처음으로 1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하기도 했다.

반면 스타머 영국 총리는 17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한 이후 미·영간 무역협정을 맺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방향성이 다소 모호해 보이는 이런 분주한 움직임의 근저에는 트럼프 당선인의 등장으로 세계질서에 예측 불가능성이 증폭되고 있다는 불안감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당선인의 강력한 '압박 전략' 효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간의 가자지구 전쟁은 포성을 멈췄지만, 세계적으로 '분쟁 지역'에서의 지정학적 긴장은 완화됐다고 보기 어렵다.

중동에서는 권력 공백 속에 이슬람 극단주의가 꿈틀대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휴전 협상이 예상되지만 구체적 윤곽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중국 역시 대만 합병의 욕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당선인은 오히려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밝히거나 캐나다의 51번째 주 편입 등을 언급하며 영토 확장 의사를 드러내 동맹들을 긴장시켰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캐나다와 멕시코를 겨냥한 관세 위협, 동맹과 적대국을 가리지 않는 보편관세 도입 등을 주장하며 국제 무역 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AP= 자료사진]

영국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레슬리 비냐무리 미국·미주 프로그램 국장은 "현재 각국 정상들이 직면한 최대 과제는 트럼프 당선인의 의중을 해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인이 단순히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현재 지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시장이나 동맹관계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 비전통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것이라면, 방문해서 선물을 주고 요구에 따라주는 외교적 조정이 영리한 대응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트럼프 당선인이 캐나다와 그린란드에 대해 진실로 계획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큰 그림 속에서 대만과 우크라이나를 포기할 생각이라면, 동맹국들은 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 경우 국방 투자를 증대하고 미국의 힘을 대신할 파트너십을 찾을 필요가 있다. 유럽의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연막 카드'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트럼프 당선인의 태도는 갈 길 바쁜 정상들의 속내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들은 세계적인 경기 부진과 인플레이션으로 불안정해진 자국 내 정치적 기반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비냐무리 국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위협에 플로리다주 마러라고까지 찾아갔다가 역풍을 맞고 사퇴를 발표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좋은 시절에도 타인의 의도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법"이라며 "세계 정상들에게는 트럼프 당선인의 의중을 파악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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