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박철홍 기자 = 신축 중인 아파트 붕괴 사고로 6명이 숨진 현장의 책임자인 HDC 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 관계자들에 대해 3년 만에 이뤄진 1심 선고에서 10명 중 3명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경영진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할 수 없고, 부하 직원 과실에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번 사고 불과 7개월 전 현산의 다른 사업장에서 17명 사상자가 발생한 철거건물 붕괴 참사 재판에서도 현산 관계자들은 1심에서 줄줄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일각에서는 건설 현장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성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3년 만에 1심 선고
(광주= 조남수 기자 = 20일 오후 재시공 중인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공사 현장. 2025.1.20
◇ '부실 공사'로 7명 사상…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은 불가
2022년 1월 11일 오후 3시 46분께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신축 아파트 구조물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이 사고로 노동자 1명이 다치고 6명이 실종됐다.
실종자 6명은 강추위 속 밤낮을 가리지 않은 29일간 수색 끝에 차가운 콘크리트 잔해 속에서 모두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는 콘크리트를 타설하던 중 최상층인 39층 바닥이 무너지기 시작해 23층까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면서 발생했다.
경찰 수사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건설사고조사위원회 등은 붕괴 원인을 세 가지로 규명했다.
최상층 시공법을 데크플레이트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새로 설치한 콘크리트 지지대 등이 과한 하중으로 작용했고, 무량판 구조에 하부층의 지지력을 보강할 동바리마저 모두 철거됐다.
이후 콘크리트 강도 부족 등 약한 구조물의 환경이 더해지면서 최상층에서 23층까지 16개 층이 무너져 내렸다.
검찰은 사고의 책임이 현산(원청)·하청업체·감리 모두에게 있다고 보고, 권순호 전 현산 대표이사 등 총 20명(법인 3곳 포함)을 기소했다.
노동자 6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였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불과 보름 앞두고 발생해 현산 경영진은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여전한 유가족의 슬픔
(광주= 정다움 기자 =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3주기인 11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공사 현장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5.1.11
◇ 재판에서 확인된 부실…경영진은 무죄
사고 발생 3년 만에 이뤄진 이날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 구조 검토 없이 하중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물(데크 플레이트 및 콘크리트 지지대)을 설치 ▲ 하부 3개 층 동바리를 무단 철거 ▲ 콘크리트 품질·강도 부족 등 3가지 원인 중 2개만 인정했다.
구조물 추가 설치 과정에서 콘크리트 지지대 6개의 하중이 30t 늘어났고, 하중 전달 경로도 바뀌어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봤다
특히 하중을 견디는 하부 3개 층 동바리가 무단 해체되면서 늘어난 상층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게 된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다만 콘크리트 품질·강도 부분은 품질과 강도가 정상 범위에 있었더라도 사고를 방지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 결과 등을 토대로 사고원인에서 제외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판단을 근거로 일단 콘크리트 품질 관련자들에게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두 번째 쟁점인 원·하청 경영진에 대한 책임성 여부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경영진에게 과실의 직접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권순호 현산 대표이사(현재는 퇴사)와 건설본부장 등은 2단계 이상 아래에 위치한 직원들에 대한 별도의 지위 및 감독 의무가 부과되지 않아 책임을 물을 수 없고, 하청인 가현건설 대표도 마찬가지라고 봤다.
붕괴한 아파트 건설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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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사급 사고에 실형 선고자 5명…모두 법정구속은 면해
재판부는 사고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거나 가장 큰 과실을 저지른 5명에게만 실형을 선고했다.
일단 현산과 가현의 각 현장소장 2명에게는 공사 현장의 실질적인 총괄 책임자로서의 책임이 무겁다고 판단해 최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가장 주요한 사고원인으로 판단된 동바리 해체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현산 직원 2명과 가현 직원 1명에 대해서도 징역 2~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과정에서 현산과 가현은 서로 동바리 해체 사실을 몰랐다거나, 원청의 승인을 받았다고 책임 미루기를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현산에는 관리·감독 책임을 소홀히 한 책임이 있고, 가현 측에는 동바리 해체를 직접 시행한 책임이 있다고 봤다.
다만 실형이 선고된 이들이 계속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항소심에서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구조변경 관여자들과 감리 책임자들은 상대적으로 책임이 덜하다고 보고 모두 징역 1년 6개월~3년에 집행유예 2~5년을 선고했다.
현산, 가현, 광장 등 회사법인에는 양벌규정에 따라 각각 5억원, 3억원, 1억원씩 벌금형을 결정했다.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
[ 자료사진]
◇ 반복된 건설 안전사고에도 관대한 처벌 '비판'
"우리나라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는데, 더 중요한 사람의 목숨을 잃고도 2년간 고친 게 하나도 없었다."
2021년 6월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 4구역 철거건물 붕괴 참사 1심 선고공판에서 연이은 붕괴 사고를 두고 재판부가 한 탄식이다.
그러나 학동 참사 1심에서 현산은 시공사로서 사고 책임이 인정됐는데도 현산 측 피고인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경종을 울리기에는 부족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번 재판에서도 현산의 직접적인 책임은 인정됐지만, 형량은 인명피해 규모나 사회적 충격에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유가족은 '솜방망이 처벌'로 규정했다.
기우식 참여자치21 사무처장은 "학동 참사보다 화정아이파크 사고는 기업의 책임이 더 큰 사고였음에도 이 정도 판결이 나온 것이 실망스럽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하지 못하더라도 재판부의 적극적인 법 해석을 하면 기업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경영진은 봐주고 현장 책임자들 일부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기업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지 의문이다"며 "아직 항소심 등이 남아있지만, 광주에서 발생한 2건의 건설 현장 안전사고에 대한 판결이 기업에 대한 봐주기 판결의 시작이 되진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