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평민들이 더 잘 아는 '원님 재판' 하나
기사 작성일 : 2025-02-17 06:00:29

짚신을 팔아 먹고사는 중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짚신 재료를 사러 시장에 갔다가 스무 냥이 든 망태기를 줍습니다. 어디 둘 곳 없는 자기 돈 두 냥도 망태기에 넣은 채 주운 물건의 주인을 찾아 나섭니다. 둘러보니 저기, 돈 망태기 주인으로 보이는 소 장수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두 냥 빼고서 돌려줍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탐욕스러운 소 장수는 스물두 냥이 다 자기 돈이라고 우깁니다. 애초, 망태기에 스물두 냥을 넣어뒀다고 거짓말을 잘도 합니다. 찾아준 사람에게 고맙다며 사례를 해도 모자랄 판에 남의 두 냥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꼴이 웃기지도 않습니다. 결국 분쟁 해결은 고을 사또의 재판에 맡겨집니다.

무원칙한 재판을 일컬어 사또 재판(원님 재판)이라고 하는 말도 있지만, 사또도 사또 나름입니다. 사또는 판결합니다. [양쪽 주장을 종합하면, 소 장수가 잃은 물건과 중이 주운 물건은 같은 것이 아니네요. 중은 물건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주운 것을 잘 보관하세요. 소 장수는 자기 물건이 나타날 때까지 잘 기다리고요.]


정의의 여신상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DB)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급해진 쪽은 소 장수입니다. 제 돈 스무 냥마저 잃게 생겼으니까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발만 동동 구르는 소 장수가 안돼 보였던지 외려 중이 나서서 아량을 베풉니다. "부처님 모시는 중이 어찌 부당한 재물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차라리 저 사람에게 스무 냥을 주는 것이 타당할 듯하옵니다". 사또는 자기 뜻대로 됐다는 양 웃으며 소 장수를 꾸짖습니다. "다시는 이런 나쁜 마음을 갖지 마시오". 민담, 야담이 소설 형식으로 묶여 한문 번역체로 1840년쯤 나온 『청구야담』의 한글 현대판은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중이 스무 냥을 건네주자 소 장수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라고요.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를 정의(正義)로 보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 재판 결과는 그들 눈에 정의롭게 비칠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여기서 '재판'이라 하지 않고 '재판 결과'라고 하는 것은 중의 너그러움, 각자 몫으로 되돌림, 소 장수의 뉘우침은 사법이 아니라 정치 과정 쪽이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움은 늘 모자라 애를 태웁니다. 주운 물건 찾아주려다 도둑으로 몰려 재판까지 받고 나서야 잃을 뻔한 제 돈 두 냥만 가까스로 되찾은 중의 처지가 되어보세요. 또 스무 냥만 망태기에 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다른 사람도 많다면 과연 어떨까요. 게다가 이 사람들이 반성의 반도 모르는 소 장수의 거짓말을 내내 모르는 체하거나 중 편도, 소 장수 편도 아니라며 말 같지 않은 중립을 되뇌고 주특기인 물타기를 한다면요.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지며 백성들의 기지를 불타오르게 하는 보물창고로 청구야담을 우러러보려는 이유입니다. (서울=, 고형규 기자,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예로 든 청구야담의 한 이야기('현명한 재판')는 취지를 보전하는 범위 안에서 변주했습니다.)

1. 작가미상/동아출판, 『청구야담』, 2016 (서울도서관 전자도서관 전자책)

2.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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