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3년] '북러밀착' 신냉전…'트럼프식' 협상에 서방가치동맹 흔들
기사 작성일 : 2025-02-19 08:00:59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자포리자 지역의 파괴된 건물


[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로마·이스탄불= 신창용 김동호 특파원 =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시작해 만 3년을 맞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다.

초반에는 군사력이 우위에 있는 러시아가 파죽지세로 진격했지만, 곧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우크라이나가 끈질기게 반격하면서 전쟁은 장기간의 교착 상태로 빠져들었고 양쪽을 통틀어 15만명 넘는 전사·사망자가 발생했다.

자유주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 권위주의·전체주의 국가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선명한 대결 구도를 형성했다.

특히 러시아가 동맹 북한을 참전시키며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기를 방불케 하는 신(新)냉전 구도가 공고화됐다.

새로운 국제질서의 도래와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기도 했다.

그러나 올 1월 백악관으로 재입성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주요국을 '패싱'한 채 친분을 내세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고 평화협상 개시를 일방적으로 선언하면서 서방 가치동맹에 균열이 생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3년 7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활짝 웃는 젤렌스키 부부


[EPA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3년간 양측 최소 15만명 사망…서방 지원에도 우크라 반격 미미

우크라이나 전쟁에 맞서 서방은 자유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고 권위주의 체제의 확산을 막는다는 목표 아래 단일대오를 이뤄 우크라이나 지원에 나섰다.

미국이 군사 지원을 주도했고, 유럽도 '우크라이나 다음은 우리'라는 위기감으로 러시아의 확장 야심에 맞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부터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대러시아 제재로 응수하며 발 빠르게 대응에 나섰다.

서방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에 빼앗긴 크림반도를 포함한 모든 점령지를 되찾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전쟁은 기약도 없이 길어졌고,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터져 세계의 시선이 분산됐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국의 지원도 주춤해졌다.

전쟁이 장기화하는 동안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양측 통틀어 최소 15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4일 언론 인터뷰에서 자국군 4만5천100명이 전사했다고 밝혔다. 유엔군축실(UNODA)에 따르면 작년 말까지 우크라이나에서 1만2천340명의 민간인 사망 사례가 확인됐다.

러시아의 반정부 성향 독립언론 메디아조나가 공개정보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이달 14일까지 러시아군 9만3천641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미공개 사례를 포함하면 전사자가 약 14만∼20만명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우크라이나로선 2023년 야심 차게 준비했던 '대반격'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이후 전황의 주도권은 러시아로 넘어갔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8월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를 기습 점령하는 성과를 거뒀지만 향후 국경선을 다시 긋기 위한 영토 협상에서 여전히 불리한 처지다.

러시아는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의 약 5분의 1을 점령 중이다. 점령 면적은 13만1천㎢로 그리스 면적과 맞먹는다.

우크라이나는 쿠르스크 지역에서 1천300㎢를 확보했다고 주장하지만, 미국 전쟁연구소(ISW) 분석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장악한 지역은 482㎢에 불과하다.


7일(현지시간) 나토 국기와 함께 스웨덴 국기가 게양되는 모습


[AF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북한, 러 쿠르스크 전선에 전격 참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좁아진 러시아는 풍부한 보유 자원을 토대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버티던 끝에 북한과 손을 맞잡았다.

특히 작년 10월 북한군이 우크라이나가 장악한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 지상군 병력 약 1만1천명을 보내 참전하면서 전쟁이 중대 변곡점을 맞았다.

러시아가 북한군을 우크라이나 영토가 아닌 자국 내 쿠르스크의 방어전선에 배치한 것을 두고 파병 명분을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을 낳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같은 움직임을 두고 "세계대전을 향한 첫 단계"라며 맹비난했고,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의 동맹으로서 우크라이나를 간접적으로 지원해온 한국이 북한과 '대리전'을 벌이는 양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파병 4개월째인 현재까지 북한군이 전황에 미친 영향은 일단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이미 북한군 중 4천명이 숨지거나 다친 것으로 파악했다.

서방 매체는 북한군이 고전적인 보병 공격 대형으로 이동하다가 무인기(드론)에 발각돼 큰 피해를 입는가 하면 기갑·포병이 지원이 부족한 것으로 보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황 평가와는 별개로 북러 관계가 '혈맹'으로 진화한 가운데 북한이 대규모 파병을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받을 첨단군사 기술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북한의 군사역량 강화는 결국 동북아와 한반도 안보 상황에 직결된다는 점에서다.

러시아는 북한군 파병을 받는 한편 중국과 무역 협력을 강화했고, 원유와 천연가스를 중국과 인도에 대량 수출하면서 생존력을 유지했다.

아울러 러시아는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에 위치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국가들과 교류하며 반서방 연대 강화에 공을 들였다.

◇ 나토 가입 저지가 불러온 역설적 결과…나토의 확장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작점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였다. 2022년 2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시작한 전쟁은 오히려 '나토 확장'이라는 정반대 결과를 초래했다.

핀란드, 스웨덴이 중립국 노선을 버리고 나토에 가입해 회원국이 32개국으로 늘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까지 협력국으로 가담했다.

핀란드, 스웨덴이 나토에 합류하면서 지중해에 이어 발트해까지 러시아를 둘러싸는 나토의 포위망이 구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세계 각국은 국방비를 앞다퉈 증액하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문제전략연구소(IISS)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방위비 총액은 전년보다 7.4% 증가한 2조4천600억 달러(약 3천570조원)로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비율도 1.94%로, 전년 1.8%보다 상승했다.

유럽 지역 방위비는 전년보다 11.7% 늘어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나토 회원국 32개국 중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이 자체 설정 '기준선'인 2%를 넘는 나라 또한 10년 전 3개국에서 23개국으로 늘었다.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은 국방비 목표를 GDP의 2%에서 더 높이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달 초에 "GDP의 3.7%까지 국방비를 증액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처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가져온 결과는 나토의 러시아 포위망 확대와 유럽 국가들의 경각심 급증에 따른 국방비 증액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를 문제 삼으며 요구한 국방비 증액이 역설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방으로 양상이 바뀐 것이다.


1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방문한 베센트 미 재무장관과 젤렌스키 대통령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유럽의 혼란…트럼프 2기의 등장, 신냉전 구도의 변곡점

나토의 외연은 넓어졌지만, 회원국 내 정치 환경은 크게 흔들렸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 급등과 경기 악화가 몰아닥친 탓이 컸다.

기존 정치 리더십이 여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이 유럽에선 극우 세력이 약진했다.

2022년 10월 '100년 만의 극우 성향의 총리'라는 타이틀과 함께 집권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강경 우파 정치세력이 의석을 불려 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했다.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조기 총선 패배로 정국 주도권을 잃은 상태다. 프랑스와 함께 유럽의 '양대 축'인 독일은 내각을 이끄는 올라프 숄츠 총리가 지난해 12월 의회의 불신임을 받아 내각이 해산됐다.

이처럼 EU에서 경제 규모가 '톱2'인 두 국가가 모두 정치 혼란을 겪으며 EU는 구심점을 잃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은 신냉전 구도에 중대한 변수가 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내각 각료 가운데 우크라이나를 가장 먼저 방문한 인물은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이었다.

베센트 장관은 지난 1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해 우크라이나가 간절하게 원하는 안전 보장은 제쳐놓고 희토류 자원의 50% 지분을 먼저 요구했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 통화 후 종전 협상을 즉각 개시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통보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그동안 양보할 수 없다고 밝혀온 나토 가입과 영토 수복 요구에 대해서도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미국 등 자유 진영은 우크라이나가 종전 조건으로 내건 영토 수복 원칙을 지지해 왔다.

하지만 가치와 도덕보다 거래와 압박을 중시하는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서방의 가치동맹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밀착해 우크라이나와 유럽을 협상에서 소외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특히 종전협상 추진 과정에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친분을 바탕으로 한 톱다운 방식의 협상으로 우크라이나와 유럽 주요 동맹국에 대한'패싱'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특유한 스타일이 향후 북핵 등을 둘러싸고 전개될수 있는 북미 협상과정에서도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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