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서툰 고려인마을 동포들 '러시아어' 재난문자 받는다
기사 작성일 : 2024-07-02 12:01:16

러시아어 재난문자에 '따봉'


(광주= 광주 고려인마을 인터넷·라디오 방송 채널인 고려방송(GBS)이 국내 최초로 러시아어 재난문자 서비스를 개시했다. 사진은 한 고려인 동포가 문자를 받고 따봉 이모티콘으로 답장한 모습. 2024.7.2 [G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광주= 김혜인 기자 = "В настоящее время в 12 городах и уездах объявлено штормовое предупреждение. Прогнозируется значительное количество осадков до завтрашнего утра.(12개 시군 호우특보 발효 중으로 내일 오전까지 많은 비가 예보됐습니다)"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 거주하는 고려인 동포들의 휴대전화에 지난달 22일 오전 러시아어로 번역한 '호우특보 발효' 재난문자가 도착했다.

한국어가 서툴러서 그동안 재난문자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고려인 동포의 숙원이 비로소 해소된 순간이었다.

광주 고려인마을은 마을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라디오 방송인 고려방송(GBS)을 활용해 국내 최초로 재난문자를 러시아어로 번역해 전송하는 문자 서비스를 지난달 19일부터 시작했다.

오픈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GBS의 재난문자 번역은 행정안전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에게 발송한 긴급문자를 러시아어로 바꿔 고려인 동포나 재한 러시아인에게 보낸다.

정부의 재난문자 수신부터 번역, 재전송까지 1분 안에 이뤄져 재난 상황을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다.

도입 약 열흘 만인 2일 현재까지 200여 명이 러시아어 재난문자를 받아보고 싶다고 GBS에 신청했다.

번역된 문자를 받은 고려인이 '단톡방' 등을 통해 다른 동포에게 공유하면서 사실상 고려인마을 주민 대부분이 러시아어로 번역된 재난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라디오 진행하는 고려방송


(광주= 광주 고려인마을 인터넷·라디오 방송 채널인 고려방송(GBS)이 국내 최초로 러시아어 재난문자 서비스를 개시했다. 사진은 고려인방송이 라디오를 진행하는 모습. 2024.7.2 [G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조상이 대대로 살았던 땅이지만, 한국어로만 전파된 재난문자는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고려인에게 또 하나의 장벽이었다.

지난달 12일 전북 부안에서 발생한 지진을 계기로 국내 이주노동자를 돕는 시민사회단체가 다국어 재난문자 제공을 정부에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던 이유와 같다.

타향살이의 설움을 달래준 러시아어 재난문자를 받아본 고려인 동포는 웃는 표정 모양의 이모티콘 등으로 GBS에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고려인 동포 박실바(72)씨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러시아어로 재난문자를 보내주는 광주 고려인마을에 감사하다"며 "장마, 태풍 등이 또 올 텐데 한국말을 잘 모르는 재외 교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믿음 GBS PD는 "문자를 보며 '유용하다', '편하다'는 고려인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며 "국내 최초 시도로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바가 없다 보니 예산상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일이 데이터와 전화번호 수집을 하며 운영하고 있다"며 "민간이 아닌 정부나 지자체에서 직접 나서서 다국어 문자 서비스가 제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GBS고려방송은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러시아어 사용자를 대상으로 재난문자 수신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다. 고려인종합지원센터 방문 또는 전화 통화로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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