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급발진 vs 조작미숙' 논란…제도적 대안 필요하다
기사 작성일 : 2024-07-03 19:00:32

9명의 생명을 앗아간 서울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의 원인을 둘러싸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경찰은 3일 브리핑을 통해 차량의 속도·급발진·제동장치 작동 여부 등과 관련해 전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감식과 감정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국과수의 정밀 분석에는 통상 1∼2개월이 걸리지만, 당국은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조사 기간을 최대한 앞당겨 결론을 내놓기 바란다.

사고 원인이 운전자인 차모(68)씨의 주장대로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인지, 아니면 운전자의 실수나 조작 미숙 등인지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경찰은 차량에 장착된 사고기록장치(EDR)를 확보해 자체 분석하는 과정에서 차씨가 사고 직전 가속페달(액셀)을 강하게 밟았다고 1차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사고 차량이 호텔 지하 주차장에서 나와 약간의 턱이 있는 출입구 쪽에서부터 과속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차량이 역주행하는 동안 보조브레이크 등이 켜지지 않은 점 등은 일단 차씨에게 불리한 정황이다.

그러나 운전자 측 주장대로 차량 결함 사고일 가능성도 여전히 배제할 수 없다. 차씨는 운전경력이 40년이 되고 지금도 버스 기사인데다 사고 당시 음주 등 심신미약 상태도 아니었다. 주의력 부족과 반응 느림 등 주로 고령 운전자에게서 나타나는 신체적 요인도 거론되지만, 지금 사회적 기준에서 68세를 고령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차씨는 사고 직후 버스회사 동료에게 "끝까지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작동하지 않았다"며 "(회피 동작도) 하고 싶었지만 워낙 빠르게 질주했고 제멋대로 갔다"고 말했다고 한다.

비슷한 사고가 날 때마다 사고 원인을 두고 '급발진 때문이다', '운전자 조작미숙 때문이다'는 논란이 되풀이되고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날 때마다 차량 제조사들부터 한사코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운전미숙 탓으로 돌리고 있다. 실제로 차량 급발진이 국내 민·형사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인정된 사례도 아직 없다. 사고기록장치(EDR) 조사에서 브레이크 등이 들어왔는데도 주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도 제조사가 운전자가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았다고 주장하거나 브레이크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고 하면 그만이고, 법원도 이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급발진 의심 사고의 원인을 둘러싼 논란과 불필요한 남녀, 세대 간 갈등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이제 제도적 대안을 적극 검토할 때다. 예를 들어 급발진 입증 책임을 전문성이 부족한 소비자에게 지도록 하는 현행법을 손보거나 최소한 차량 내 페달 근처에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방안을 의무화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 운전자의 주장과 주변 목격담, 오류 가능성이 있는 EDR 기록을 토대로 한 기존의 조사 방식도 이참에 손봐야 한다. 그런 노력조차 없이 사고가 나면 비슷한 논란이 되풀이되고, 사회적 갈등이나 불안만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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