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손님, 계절근로자] ① 이탈률 81→1%로 '뚝'…고창의 3년
기사 작성일 : 2024-10-11 09:01:15

[※ 편집자 주 = 인구 급감과 빠른 고령화로 농촌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인력 구하기가 어려운 농가에 외국인 계절근로자는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존재가 됐습니다. 전국에서 계절근로자를 가장 많이 배치한 전북 고창군 사례를 중심으로 계절근로자와 상생하는 방안과 개선점 등을 담은 기사를 두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오만종씨가 계절근로자에게 쪽파 종구 심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촬영 나보배]

(고창= 나보배 기자 = 따사로운 가을볕이 내리쬐는 시월의 어느 날.

지난 4일 오후 전북 고창군 아산면의 한 쪽파 농가에는 30여명의 일꾼이 농막에 한데 모여있었다.

대부분은 한국에 5개월 이상 체류하며 일을 하는 계절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점심 식사 후 삼삼오오 둘러앉아 자국어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한가롭게 쉬고 있었다.

농장주인 오만종(63)씨는 "농촌에 사람이 없다. 계절근로자가 없으면 농촌이 돌아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어가 달라) 말을 잘 못해도 손짓·발짓을 하면 다 통한다. 올봄에 20명쯤 우리 농가로 와서 모두 잘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점심시간이 막 끝나는 오후 1시가 되자 하나둘씩 자연스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6명씩 짝을 지어 각각의 비닐하우스에 들어가 쪼그려 앉은 뒤 능숙하게 쪽파 종구(씨알)를 간격에 맞춰 심었다.


지난 5월 열린 고창군 계절근로자 환영식


[고창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1일 전북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올해 도내에는 7천200명의 계절근로자가 배치돼 농촌 일손을 돕는다.

특히 고창군에는 지난달 기준 전국에서 가장 많은 1천800명의 계절근로자가 농가에 배정됐다.

인구 5만1천명인 고창군 인구의 3.5%에 해당하는 숫자다.

이처럼 많은 계절근로자가 고창군에 배정된 것은 기계화된 논농사와 달리 밭농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창군은 멜론이나 수박·땅콩·복분자 등 밭작물이 특화된 곳이라 계절근로자의 손길 없이는 사실상 밭농사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고창군은 인구 10만명당 100살 이상 노인 비율이 전남 고흥과 경남 합천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높을 정도로 고령화 지역이기도 하다.

오씨는 "60대면 '젊은이'로 불릴 만큼 농촌 고령화가 심각하다. 게다가 여름에는 비닐하우스 주변에만 가도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뜨겁기 때문에 한국인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행히 계절근로자 덕분에 무사히 농사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계절근로자 중 일부는 주머니 쪽에 선풍기가 달린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이는 오씨가 직접 인터넷에서 구매해 나눠준 것이라고 한다.

그는 "(과거 언론에 보도돼 문제가 됐던) 창고를 개조한 숙소 같은 데를 제공하면 큰일 난다"며 "에어컨과 난방시설을 갖춘 숙소를 제공해야 하고, 농가가 숙식을 제공할 경우 계절근로자에게 받을 수 있는 비용도 정해져 있다"고 부연했다.

이렇게 농촌에 잠시 생활의 터전을 마련한 계절근로자는 농사뿐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읍내에서 만난 한 60대 주민은 "계절근로자 덕분에 아시아 할인점들이 많이 생겼다"며 "이들이 일을 마치는 저녁 7시만 되면 마트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저녁만 되면 불이 꺼졌던 예전과 달리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고창군 방문한 캄보디아 웅셍 리티 고문(가운데)


[고창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실 고창군은 3년 전만 해도 계절근로자 '이탈률 81%'라는 불명예를 떠안았었다.

당시 브로커를 통해 입국한 계절근로자는 브로커 수수료 등을 제외하면 손에 쥐는 게 없게 되자 돈을 더 많이 주는 공장 등을 찾아 농장에서 도주했다.

이에 군은 이탈률을 줄이기 위해 담당 공무원이 직접 캄보디아나 베트남 등으로 가 면접을 보고 계절근로자를 선발했다.

또 계절근로자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지난해 계절근로자 관리센터를 설립했고, 인권관이 하루에 농가 두 곳을 방문하며 근로자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이탈률이 18.2%까지 줄었고, 올해는 9월 기준 1.2%까지 떨어졌다.

군은 올해 고창의 대표 축제인 모양성제에 캄보디아에서 계절근로자를 담당하는 노동직업훈련부의 웅셍 리티 고문을 초청해 계절근로자 및 농가들과 만나는 자리도 만들 계획이다.

두 나라 당국이 이들을 깊이 이해하고 상생하려는 취지에서다.

김효중 고창군 농촌인력팀장은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소통이 어렵기 때문에 통역관이 인권관과 함께 2인 1조로 농가를 돌며 고용주와 계절근로자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캄보디아어와 베트남어로 된 소통 책자를 만들어 농가에 배부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인력 부족과 인건비 폭등, 고령화 속에서 농촌인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촘촘한 준비를 해야 한다"며 "다방면으로 살펴 보완한 결과 이탈률이 크게 줄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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