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러·극우 승리' 루마니아 대선 1차 투표 결과 무효화(종합)
기사 작성일 : 2024-12-07 05:00:58

친러시아 성향의 컬린 제오르제스쿠 후보


[로이터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로마= 신창용 특파원 = 루마니아 헌법재판소가 러시아의 선거 개입 의혹에 휩싸인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결과를 무효로 했다고 AP, 로이터 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헌재는 이날 성명에서 "루마니아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 절차가 전면 재실시될 것"이라며 "정부가 필요한 절차를 위한 새로운 날짜와 일정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8일로 예정됐던 대선 결선 투표는 취소됐다. 결선에선 친러시아 성향의 무소속 극우 후보 컬린 제오르제스쿠와 중도우파 야당 루마니아 구국연합(USR)의 엘레나 라스코니 대표가 맞붙을 예정이었다.

루마니아가 지난 1일 총선을 치른 가운데 클라우스 요하니스 대통령은 새 정부가 구성되면 대선 투표일을 정해 선거 유세를 포함한 모든 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새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대통령직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달 24일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킨 제오르제스쿠 후보 측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헌재가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무효로 한 이유는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러시아의 선거 개입 의혹이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고 주요 외신들은 전했다.

지난 4일 기밀 해제된 루마니아 정보국(SRI) 보고서에는 러시아의 선거 개입과 관련한 여러 정황이 담겼다.

여기에는 러시아로 추정되는 '외부 세력'이 제오르제스쿠 후보의 선거 유세를 위해 텔레그램을 통해 틱톡 사용자와 인플루언서를 대규모로 모집해 조율된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등 여론 조작이 의심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SRI는 이는 제오르제스쿠 후보의 예상치 못한 득표율 급증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며 루마니아의 국익에 반하는 외부 세력이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결국 헌재는 SRI의 기밀 해제 보고서를 근거로 대선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판단해 재선거를 명령한 것으로 보인다.

제오르제스쿠 후보는 그간 선거운동 자금은 한 푼도 쓰지 않았고 소셜미디어(SNS) 틱톡을 활용해 선거 운동을 펼치며 '입소문'을 탄 덕분에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친러시아 성향을 보여 서방으로부터 경계의 시선을 받았다.

그는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지도자", "우크라이나는 본래 정식 국가가 아니다"와 같은 러시아를 두둔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2021년 인터뷰에서는 루마니아 남부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미사일 방어 시설이 설치된 것을 두고 '외교적 수치'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선 자신이 당선될 경우 러시아 침공에 항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헌재의 이번 판결로 루마니아는 당분간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1차 투표 당시 2위를 차지해 결선에 오른 라스코니 대표는 "헌재의 결정은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이며 투표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짓밟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라스코니 대표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제오르제스쿠 후보를 48.6% 대 46.4%로 근소하게 앞서는 등 결선 투표에서 역전이 유력시되던 상황이었다.

반면 결선에 진출하지 못한 후보들은 헌재의 결정을 환영했다. 특히 집권당인 사회민주당(PSD) 후보로 1차 투표에서 3위로 탈락한 마르첼 치올라쿠 총리는 "헌재가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즉각 지지 성명을 냈다.

그는 "기밀 해제 보고서는 러시아의 개입으로 인해 루마니아 국민의 투표 결과가 왜곡됐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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