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 내몰린 기독교 청년
김종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등이 한울회 사건이 발생하기 전 예배 후 사진관에서 함께 찍은 기념사진. 촬영 시기는 1977년 혹은 1978년쯤으로 추정함.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이충근 교사, 네 번째가 홍응표 목사, 일곱번째가 박재순 목사. 둘째 줄 왼쪽 첫 번째가 이규호 씨, 오른쪽 끝이 이건종 목사. 맨 윗줄 왼쪽이 김종생 총무, 네 번째가 임세영 한국과학기술교육대학교 명예교수. [한울모임 편집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세원 기자 = 전두환 정권 시절 공안 조작 사례 중 하나로 지목된 '한울회 사건'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진실 규명 결정을 내린 지 12일로 1년이 된다.
한울회 사건은 대전의 한 기독교 모임(한울모임)이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공산주의를 찬양했다며 공안 당국이 1981년 3월 무렵 강제 수사에 착수하면서 시작됐다. 교사, 대학생, 청년 신학도 등 6명이 기소됐고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실형 또는 집행유예 판결이 확정됐다.
하지만 사건 발생 33년여가 지난 작년 12월 진실화해위는 조사 과정에서 불법 구금, 폭행, 고문, 가혹행위, 진술 강요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하고서 국가의 사과와 재심 등을 권고했다. 피고인들은 올해 2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재심 개시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고 이들은 43년간 반국가단체 활동을 했다는 멍에를 벗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반국가단체나 이적단체로 지목된 아람회 사건이나 오송회 사건 피해자들은 재심에서 무죄나 면소 판결을 받고 국가배상도 받았다. 한울회 사건 관계자들에 대해서는 이런 피해 회복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당사자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더 크다.
진실화해위 결정 1주년이 다가오는 것을 계기로 와 대면 혹은 전화로 접촉한 사건 관계자들은 마음의 상처와 억울함을 호소하며 하루빨리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박재순 목사
[촬영 이세원]
박재순(74) 목사는 한울회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그는 "공산 국가의 계급독재나 폭력혁명을 너무 싫어한다"면서 애초에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반국가단체라는 엉뚱한 누명을 썼다"고 말했다.
사건 여파로 박 목사의 진로는 틀어졌다. 부인과 독일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려고 입학 허가를 받고 장학금까지 확보했지만, 당국이 유학을 허락하지 않아 꿈을 접어야 했다. 한신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공안 사범으로 낙인이 찍힌 탓에 제대로 된 자리에 정착하지 못하고 강사로 전전했다.
박 목사는 "검찰과 사법부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놓아두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며 진상 규명은 관련자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역시 한울회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건종(69) 목사는 "현재는 당시 기억이 생생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해결되거나 극복된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무시하고 억눌러 온 과정이었다"고 사건이 남긴 트라우마를 돌아봤다.
이건종 목사
[촬영 이세원]
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이것이 잊히거나 단순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세계로, 더 나은 관계로,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극복이고 치유"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을 보고 "언제든지 옛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다"면서 한울회 사건에 대한 "국가 차원에서의 사과와 (피해자의) 용서가 있어야 진정으로 이 문제가 극복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신학대를 휴학하고 방위병으로 복무 중이던 김종생(68)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는 한울회 사건으로 가혹행위를 당하며 조사를 받았다. 이후 실형을 선고받고 특별사면을 받을 때까지 2년 6개월가량 구금 생활을 했다.
김종생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촬영 이세원]
김 총무는 "개인적인 억울함도 있지만, 신앙이나 양심에 따라서 하는 말이나 행동이 정부의 입맛에 의해 재단 당하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국가의 부당한 폭력이 재발하지 않도록 진상을 규명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울회 사건은 증인으로 법정에 불려간 당시 고교생들에게도 아픔을 남겼다. 한울모임에 참가했던 예현주(61) 씨는 법정에서 검찰에 불리한 증언을 했다가 집요하게 진술 번복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예현주 씨
[촬영 이세원]
"집에 갔더니 덩치가 큰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중략) 그는 법정에 갈 때도 귀에 대고 진술해야 할 내용을 계속 이야기했어요. 진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증언을 번복했다. 예씨는 "내가 선생님들(한울회 사건 피고인 6명)의 삶을 망치는 데 일조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홍성환(73) 씨는 "(학생들이) 거짓 증언을 해서 우리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미안한 마음에 제대로 연락도 못 했다"며 "나 때문에 학생들이 고3 때 저렇게 피해를 봤다는 생각에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홍성환 씨
[촬영 이세원]
서로에 대한 죄책감 속에 지내던 이들은 재작년 '한울회 사건의 진실'이란 책을 출간하면서 다시 만났고 그제야 서로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유죄 판결을 받은 6명 중 1명인 이규호(1958∼2021) 씨는 진실화해위의 결정을 기다리던 중 2021년 뇌졸중으로 작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