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불안, 외환시장에 그대로 반영
황광모 기자 =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정치적 불안정에 대한 자본시장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이날 거래를 시작한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은 하락 출발했고, 원/달러 환율은 8원가량 오른 1,420원대 후반에서 거래되고 있다. 2024.12.9
민선희 곽윤아 기자 =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폐기 후 첫 거래일에 장중 환율이 1,430원을 넘고 주가는 2,400선이 깨지는 등 투자 심리가 불안한 모습이다.
국회 탄핵안 표결이 국민의힘 의원들 불참으로 무산되면서 비상계엄으로 촉발된 정국 불안이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되자 금융시장에서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주가가 연중 최저점으로 밀려났다.
9일 미국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장 초반 1,430원대로 상승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6.8원 오른 1,426.0원에 출발해 오전 10시 7분께 1,431.2원까지 뛰었다.
3일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이어 7일 탄핵안이 정족수 미달로 폐기되면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분위기다.
야당은 가결될 때까지 매주 탄핵안을 상정하겠다고 예고했으며, 이번 주에도 탄핵안을 발의하고 14일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정치 관련 불확실성 고조로 환율이 당분간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도 당국 개입 경계감이 상승 폭을 제한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정국 불안 장기화는 국내 증시 외국인 자금 이탈을 부추기는 재료"라며 "원화 위험자산 매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민 연구원은 "이번 정치적 불안이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악재라고 진단한다"며 "원/달러 환율 단기 상단을 1,450원으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NH투자증권[005940]은 원/달러 환율 상단을 1,450원으로 유지하면서, 탄핵 정국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개입 의지가 충분하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부 정치 리스크와 연동해서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있지만, 환율 방향을 바꿀 재료는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연말·연초, 내년 1분기에 이런 상황이 지속하더라도 연간으로는 환율이 1,300원대 초중반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증시에서도 코스피와 코스닥이 나란히 연저점을 찍었다.
코스피는 전 거래일보다 35.79포인트(1.47%) 내린 2,392.37로 출발한 뒤 2,390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장중에는 2,374.07까지 밀려 지난해 11월 3일(2,351.83) 이후 약 1년 1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 개인투자자가 3천683억원 매도 우위를 보이며 지수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주 말(6일) 코스피·코스닥시장에서 7천500억원어치의 주식을 순매도한 개인들의 투매 양상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3거래일 연속 순매도하던 외국인은 112억원 순매수하고 있다. 기관도 3천281억원 순매수 중이다.
코스닥도 전 거래일보다 11.98포인트(1.81%) 하락 출발한 뒤 낙폭을 키웠다.
장중 635.98을 기록해 지난 2020년 5월 4일(635.16) 이후 4년 7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지원 KB증권 연구원은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 불성립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연장됐다"며 "국내 증시와 외환 시장의 단기적인 변동성 확대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국은 금융시장 안정을 강조하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장 시작 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이 참석한 거시경제·금융 현안 간담회(일명 'F4' 회의)를 열고 "가용한 모든 시장안정 조치들이 즉각 시행될 수 있도록 만전을 다하겠다"며 "증시 안정 펀드 등 기타 시장안정 조치가 언제든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식시장과 관련해선 밸류업 펀드 중 300억원이 이미 투입됐고, 이번 주 700억원·다음 주 300억원이 순차 집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주에는 3천억원 규모의 2차 펀드가 추가 조성된다.
또한 외화자금시장에는 필요시 외화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을 통해 외화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고, 외환 유입을 촉진하기 위한 구조적 외환 수급 개선방안도 이달 중 발표하기로 했다.
이어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농협) 회장을 불러 금융 상황 점검 회의를 하고 금융 자회사들의 유동성과 건전성을 면밀히 점검하는 동시에 기업의 경제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자금운용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금융지주는 대외신인도 측면에서도 최전방에 있다"며 "외국계 금융사·투자자 등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각 지주사의 안정성과 우리 금융 시스템의 회복력도 적극적으로 소통해달라"고 당부했다
반면 가상자산은 국내 주식, 원화와는 달리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가상자산 육성 공약에 힘입은 것이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에서 이날 오전 10시 8분 기준 1비트코인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0.49% 하락한 1억4천31만5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다만, 같은 시각 거래대금은 약 524억원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
1비트코인 가격은 지난주 해외 거래소에서 처음 10만달러를 돌파했으며, 국내 원화 거래소에서도 1억4천만원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