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1,450원 넘어 기업들 비상…"내년 사업계획 조정해야"
기사 작성일 : 2024-12-19 14:00:21

김윤구 김동규 김아람 강애란 기자 = 19일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서자 원자재나 원재료를 많이 수입하는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코스피 하락세, 환율은 오름세


김도훈 기자 =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코스피 및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 이상 내린 채 거래를 시작 했으며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 가량 오른 채 거래를 시작했다. 2024.12.19

원자재를 수입해 제품을 생산하는 대부분 기업은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수입 가격 상승 때문에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일부 기업은 긴급히 내년도 사업계획 조정을 검토하거나 수입선 다변화, 수입 시점 조정 등 환율 변동 대응에 나섰다.

◇ 반도체·배터리 업계 투자비 증가 우려

한국의 대표 수출 산업인 반도체와 자동차는 환율 변동 영향을 크게 받는다.

달러로 결제하는 일부 수출 기업에는 단기적으로 유리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원자재 가격 상승과 투자비 증가 등의 우려가 있어 리스크로 작용한다.

반도체 업계는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단기적으로는 제품 판매 가격이 높아져도 장기적으로는 수입하는 웨이퍼나 원자재 가격 상승이 수익에 타격을 준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있는 만큼 강달러 추세가 장기화하면 설비 투자 비용이 증가한다.

배터리 업계도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이 미국에 배터리 공장 신·증설을 활발하게 하고 있어 강달러로 투자액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상승하면 국내 자동차 업계 매출은 4천억원가량 증가하며 이 가운데 일부는 부품, 원자재 비용이나 현지 마케팅 비용 등으로 상쇄된다.

정유업계는 연간 10억배럴 이상의 원유 전량을 해외에서 달러화로 사들여서 환율 영향을 크게 받는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석유 제품 수출에는 유리할 수 있지만, 원유를 구매할 때 발생하는 환차손으로 경영 실적에는 악영향이 발생한다.

철강재 생산에 필요한 철광석과 제철용 연료탄 등의 원재료를 수입하는 철강 업계 또한 환율 급등이 골칫거리다.

수입 비용이 증가해 원가 부담이 증가하는 데다, 글로벌 경기 둔화 속에 철강 수요까지 위축되면서 원자잿값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금리 인하 소식에 하락세 출발한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


김도훈 기자 =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코스피, 코스닥 지수 및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 이상 내린 채 거래를 시작 했으며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 가량 오른 채 거래를 시작했다. 2024.12.19

◇ 먹거리 물가 오를 수도…원재료 수입 가격 상승

환율 상승으로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하는 식품업계는 큰 고민에 빠졌다.

식량자급률이 하위권인 한국은 식품 원재료 등을 많이 수입하기 때문에 원화 가치가 하락해 원재료 수입 가격이 오르면 식품 기업들은 제품 원가 압박을 받게 된다.

이는 라면, 빵, 칼국수, 과자, 초콜릿, 주스 등 광범위한 식품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제과업체 관계자는 "원재료 수급에서 환율이 중요하니 예의주시 중"이라면서 "그렇지 않아도 올해 초부터 환율이 높았는데 최근에는 더 가파르게 높아져 굉장히 고민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환율 때문에 상당히 힘든 상황"이라면서 "내수 부진에다 원재료가 많이 올랐고 고환율까지 겹쳐 '삼중고"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초콜릿 재료인 코코아 가격은 1t(톤)당 1만2천달러를 돌파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으며 유지류, 유제품 등의 국제 가격도 많이 오른 상황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7.5로 전달 대비 0.5% 상승해 19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3∼6개월 치의 원재료 재고가 있기 때문에 당장은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도, 고환율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식품기업들은 최근의 환율 급등에 따라 이미 짜둔 내년 사업계획을 다시 조정해야 할 판이다.

한 식품기업 관계자는 "환율 1,400원 정도를 기준으로 사업계획을 세웠는데 환율 상승을 반영해서 계획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도 "사업계획을 이미 짰지만 수정해야 할 것 같다"며 "수입선 다변화나 내부 비용 절감 등도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 사업 비중이 큰 식품 기업보다는 내수 중심 기업이 원화 가치 하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어 CJ제일제당[097950]의 경우 지난해 밀가루와 설탕, 식용유를 생산하기 위해 외국산 원당, 원맥, 대두를 구입하는데 2조3천억원을 썼지만, 식품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기 때문에 환율 상승에도 비교적 느긋한 입장이다.

해외매출 비중이 80% 가까운 삼양식품[003230]은 환율 상승의 수혜주로 꼽히면서 시가총액 6조원을 넘보고 있다.

반면 오뚜기의 경우 해외 비중이 10% 정도에 불과해 환율 급등으로 고심하고 있다.


해외에서 과일, 육류, 수산물 등을 수입하는 대형마트는 원산지 구성을 다양화하고 수입 시점을 조정하는 등 환율 변동에 대응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수입고기 중 미국산 소고기를 대체해 12월부터 캐나다산 물량을 테스트 운영 중이다.

또 내년까지 환율 상승 기조가 예상됨에 따라 내년 1월부터 할당관세가 풀리는 호주산 소고기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마트 역시 장기 보관 비축이 가능한 냉동육은 환율, 관세 등을 고려해 통관 시점을 미루거나 당기는 등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냉장육은 주 단위로 발주가 이뤄져 환율 영향을 받지만, 수입산이 전체 매출의 10% 내외 수준에 머문다.

이마트 관계자는 "최종 고객 판매가를 책정하는 데는 원가뿐만 아니라 고객 수요, 프로모션 여부, 기타 판관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며 "환율 변동에 따라 즉각 판매가가 올라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면세업계는 고환율이 지속되면서 고객들에게 '환율 보상'을 제시하고 나섰다. 일정 금액 이상 구매하면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롯데면세점은 명동본점과 월드타워점, 부산점, 제주점에서 내국인 회원에게 최대 124만원까지 환급해주는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또 롯데인터넷면세점은 지난 10월부터 당일 기준 최대 177달러의 스페셜포인트를 증정하고 있다.

신세계[004170]면세점 역시 환율 보상 이벤트로 온라인몰에서 50달러 이상 결제하면 사용할 수 있는 15% 쿠폰을 증정하고 있고, 신라면세점도 환율 보상 프로모션으로 더블 적립금과 추가 혜택 적립금을 제공한다.

다만 면세업계는 달러로 직매입하는 상품에 대해서는 환율 타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보통 시즌(계절)에 따라 1년 전 발주를 하기 때문에 환율이 올랐다고 당장 발주량을 급격하게 줄일 수는 없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발주량을 조금씩 조절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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