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야스쿠니 참배 비판' 와타나베 요미우리그룹 대표 별세(종합)
기사 작성일 : 2024-12-19 14:00:59

일본 요미우리신문그룹 와타나베 쓰네오 대표이사 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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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쿄= 박상현 특파원 이충원 기자 = 일본 정계와 스포츠계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일본 전후(戰後)의 괴물'로 불린 와타나베 쓰네오(渡邊恒雄) 일본 요미우리신문그룹 본사 대표이사 겸 주필이 19일 오전 2시께 도쿄도 병원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향년 98세.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와타나베 대표는 지난달 말까지 정기적으로 출근해 임원 회의 등에 참석했으나, 이달 들어 몸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서 치료받아 왔다. 2022년 5월24일 이사회에서 회장 겸 주필로 연임됐다.

도쿄에서 태어난 고인은 도쿄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50년 요미우리신문에 평기자로 입사해 워싱턴 지국장, 편집국 총무 겸 정치부장, 전무이사 주필 겸 논설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그룹 본사 대표이사 사장, 회장을 지냈다.

1991년 사장에 취임한 뒤 요미우리신문을 일본 최대 신문으로 키웠다. 요미우리신문 발행 부수는 1994년 처음으로 1천만부를 돌파했고, 2001년 1월에는 1천31만부라는 최고 부수 기록을 달성했다.

와타나베 대표는 보수 성향 최대 일간지인 요미우리신문 논조를 중용이라는 현실적 관점에서 자유주의적 보수 노선으로 확립했다고 이 신문은 평가했다.

아울러 1994년에는 '헌법 개정 시안'을 발표해 그동안 금기시됐던 헌법 관련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고, 1999년부터 4년간 일본신문협회장으로 활동하며 활자 매체 진흥을 도모했다고 덧붙였다.

고인은 일본 정계와 스포츠계에도 강한 영향력을 미쳐 '일본의 마지막 괴물'로 불렸다. 도쿄대생 시절에는 공산당원이었다.

1950년대 정치부 기자 시절 정계 거물이었던 오노 반보쿠(1890∼1964)의 집에 찾아가 손님들의 신발 정돈 등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는 행동으로 정계 거물들의 신임을 얻었다.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시기에는 오노의 담당 기자 겸 참모로서 한일간 비밀 교섭에 다양한 형태로 참가했다. 1960년대 초 박정희 정권 이인자이던 김종필을 오노 당시 자민당 부총재와 연결한 것도 고인이었다. 이 과정에서 '김종필-오히라 메모'를 단독 보도했다.

이후 현역 정치인을 능가하는 정치적 감각으로 막후 영향력을 발휘하며 주요 정권 개각과 총리 인선에도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9월 아베 신조(1954∼2022) 총리가 사퇴하자 자민당 내 파벌 지도자들을 움직여 아소 다로 대신 후쿠다 야스오를 차기 총리로 지목해 성사시켰다.

2010년 12월에는 당시 야당이었던 자민당 총재를 만나 민주당과의 연립을 제안했다.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이 구상은 일본 정계를 뒤흔들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아베 신조, 기시다 후미오 등 총리를 지낸 정치인들과 두루 친분을 쌓았다.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아사히신문과 입장이 달랐지만, 국가주의나 전체주의와는 선을 그었다. 고인은 일본 정치인이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찾아가 공식 참배하는 것을 비판해 왔다.

그는 2006년 아사히신문 지한파 논객인 와카미야 요시부미 논설주간과 대담에서 "군국주의를 부채질하고 예찬하는 전시품을 늘어놓은 박물관을 야스쿠니신사가 경영하고 있다"며 "그런 곳에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주간지 '슈칸분슌' 온라인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해 1월 발간된 책에서도 A급 전범이 분사되지 않는다면 정치권력자는 공식적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05년 8월∼2006년 8월 요미우리신문의 '검증 전쟁책임' 기획 기사 연재도 고인의 주장에 따른 것이었다.

일본 정부를 향해서는 전쟁의 잘못을 인정하고 역사 인식에 대한 도덕적 기준을 의무교육 교과서에 기술해 국제 정치적으로 이 문제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본 보수·우파의 상징적 원로이자 '막후의 쇼군'으로 불렸다.

또 1996년부터 약 8년 동안 일본 프로야구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구단주로 활동했고, 일본 국기(國技)로 불리는 스모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요코즈나를 심의하는 위원회의 위원장도 지냈다. 요미우리신문은 디지털화에 늦었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는 고인이 종이신문을 고집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기시다 전 총리는 와타나베 대표 별세와 관련해 "총리 재임 중에 조언과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며 "한 시대가 끝났다는 느낌"이라고 교도통신에 말했다.


2008년 11월5일의 고인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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