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 나눠주는 배식봉사자들
(무안= 이진욱 기자 = 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을 위한 배식봉사를 하고 있다. 2024.12.31 [공동취재]
(무안= 장지현 기자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179명이 숨지며 일주일간 무안국제공항에 머물러야 했던 유가족들.
유가족들을 돕기위해 자원봉사자들과 관계기관 공무원들도 일주일간 '고된 여정'을 보냈다.
국토부와 경찰, 소방 등 관계기관은 사고 현장을 수색하며 시신 수습과 사고원인 규명에 주력했고, 전남도와 광주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유가족을 위한 행정 지원에 힘썼다.
자발적으로 모인 수천 명의 봉사자들은 식사와 생활필수품 지원에 힘썼고, 의사와 약사, 변호사 등 직능단체는 전문 분야를 살려 이들을 도왔다.
슬픔을 나누는 국화
(무안= 김도훈 기자 = 2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조문객에게 국화를 나눠주고 있다. 2025.1.2
◇ 의료·법률·식사 등 각계 4천944명 '온정의 손길'
"너무 큰 아픔이지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왔습니다."
5일 무안국제공항 관리동 앞 야외에 차려진 밥차에서 열심히 국을 젓고 있던 김세미가(46)씨의 말이다.
무안공항에는 사고가 발생한 지난 29일부터 각종 지원 부스가 하나둘 차려져 힘겨운 여정을 겪는 유가족 옆을 일주일간 지켰다.
전남도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까지 무안공항을 찾은 자원봉사자는 4천944명.
식료품과 담요, 핫팩을 포함해 7천400개에 이르는 구호 물품도 현장에 지원됐다.
공항 1층 대합실 한편에 마련된 의료지원 센터에선 현재까지 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등 총 594명의 지원 인력이 유가족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부스에서 양·한방 진료를 받은 환자만 총 2천141명. 176명이 수액을 맞았고 720명이 약품을 처방받았다.
유가족과 재난 대응 공무원 등 77명은 사고 트라우마 등을 호소하며 심리 상담을 받았다.
유가족 위한 통합심리지원 부스 설치
(무안= 이진욱 기자 = 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을 위한 통합심리지원 부스가 마련돼있다. 2024.12.31 [공동취재]
이곳 부스에서 만난 조옥현(55) 한의사는 "큰 비극이 발생한 이곳 공항에서 많은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하고 계신다"며 "의료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광주지방변호사회는 공항 2층 한편에 현장 상황실을 마련하고 참사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법률 지원에 나섰다.
변호사 40여 명으로 구성된 법률지원단이 항공사·한국공항공사·국가 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등 무료 법률 상담을 제공했다.
전남도자원봉사센터, 대한적십자사를 비롯해 각종 자원봉사 단체에서 꾸린 지원 부스가 일주일간 공항을 빼곡히 메웠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스스로 찾아온 이들이 부스를 지키고 공항을 누비며 유가족을 도왔다.
초코파이, 귤, 김밥 등 허기를 달랠 간식거리를 준비해 찾아오는 이들에게 내밀었고, 임시숙소로 마련된 텐트를 직접 찾아가 움직일 힘조차 없을 유족의 도시락을 챙기기도 했다.
공항 본관과 관리동 사이 야외 공간에는 밥차가 마련돼 유가족과 봉사자들의 매 끼니를 챙겼다.
밥차 자원봉사자 김세미가(46)씨는 "어제 국가 애도 기간이 끝나서 오늘은 너무 휑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달려왔다"며 "너무 많은 분이 희생됐다. 상상할 수도 없는 아픔이지만 식사는 하셔야 하지 않겠냐"고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달 31일 경기 평택에서 내려와 엿새째 물품 지원 등을 돕고 있는 김규철(17)군은 "참사 소식을 듣고 무작정 달려왔다"며 "몸은 힘들지만 가족을 잃으신 유가족분들이 저희보다 훨씬 더 힘드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음식 준비하는 배식봉사자들
(무안= 이진욱 기자 = 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을 위한 배식봉사를 하고 있다. 2024.12.31 [공동취재]
◇관계기관 공무원들도 한마음으로 지원…유족 "감사"
"빈 공항을 보니 공허하고 착잡합니다. 부디 유가족분들이 장례를 잘 치르시기만 바랄 뿐입니다."
전국에서 파견된 1만1천여명의 관계기관 공무원들도 일주일 내내 사고 현장 수습과 유가족 지원에 힘썼다.
먼저 국토교통부는 중앙사고수습대책본부를 설치하고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 조사관 등을 현장에 급파해 사고원인 조사에 나섰고,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중대본 1차장을 맡아 현장에서 매일 두 차례씩 유가족에게 시신 수습 상황을 브리핑했다.
제주항공은 무안공항에 직원 약 260명을 파견해 유가족을 지원했고, 한국공항공사는 사고수습 대책본부를 꾸려 현장 수습을 지원했다.
경찰과 소방 공무원 등 현장 대응 인력들은 참사 당일부터 사고 현장에 투입돼 현장 감식과 수색 등에 참여했다.
전남도는 1대1 유족 전담 공무원을 통해 장례 절차, 의료 지원, 민생 지원 등 유가족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도왔다.
유족지원창구에서 만난 한 전남도청 관계자는 "밤새 창구를 지키며 유가족들의 문의에 대응했다"며 "빈 공항을 보니 마음이 아픈데 유족분들 부디 장례를 잘 치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합실에서 만난 한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유가족 심리 상담을 지원하기 위해 며칠째 공항에 머무르고 있다"며 "참사가 발생했으니 할 일을 하는 것이지만 마음이 아프긴 마찬가지다. 잘 추스리시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수습 당국에 감사의 인사말 하는 박한신 유가족대표
(무안= 조남수 기자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8일째인 5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박한신 유가족대표가 수습 당국에 감사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1.5
유가족들은 공항에서 머물렀던 일주일간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자원봉사자들과 관계 당국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희생자 시신 인도가 마무리돼 이날 대부분의 유가족이 공항을 떠난 가운데, 임시 숙소로 사용됐던 일부 텐트나 공항 계단에 감사 쪽지가 붙기도 했다.
지금은 비어 있는 한 텐트에는 "딸, 사위, 손자, 손녀를 잃은 유가족"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그동안 자원봉사자 여러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 몇자 적어봅니다. 고맙고 감사했습니다"라는 내용의 쪽지가 붙었다.
분향소 옆에 마련된 '추모의 계단'에 붙은 한 쪽지에는 "많은 봉사자님들! 감사합니다. 따뜻하게 웃으며 인사하지 못해서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유가족들 마음 속은 감사로 가득합니다"라는 내용이 적혔다.
박한신 유족 대표는 이날 오전 공항에서 마지막 브리핑을 열고 수습 당국 관계자 약 20명을 앞으로 불러 "이분들이 지난 일주일 동안 욕도 많이 먹고 고생을 많이 했다. 유족을 대표해 정말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