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크사 사원 옆 황금돔 모스크
(예루살렘= 김동호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3대 종교의 성지인 동예루살렘에 황금색 돔 지붕을 얹은 '바위 사원'이 서 있다. 2025.1.19
(예루살렘= 김동호 특파원 =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휴전 발효를 하루 앞둔 18일(현지시간) 오전.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3개 종교가 성스럽게 여기는 동예루살렘의 한가운데 우뚝 선 황금색 돔 모양의 이슬람교 사원 건물이 시선을 잡아 끌었다.
무슬림이 '알하람 알샤리프'로, 유대인이 '성전산'으로 각각 부르는 역사적인 장소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도화선이 돼온 장소이기도 하다.
유대교 안식일인 이날 성전산 바깥 아래 서쪽벽, 이른바 '통곡의 벽' 앞은 작고 둥근 모자 카파를 정수리에 얹은 유대인 남성들로 북적였다. 여성들은 벽으로 가려진 별도의 공간에 모여있는 탓에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이들이 '모세오경' 토라 두루마리나 유대교 경전을 펴고 기도하는 소리가 마치 흐느끼는 것처럼 들렸다.
통곡의 벽
(예루살렘= 김동호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2025.1.19
이들은 고대 이스라엘왕국 솔로몬왕이 세웠던 성전 터로 여기는 성벽 위로는 올라가지 않은 채 벽 주변에만 머물렀다.
이스라엘이 1967년 3차 중동전쟁 때 요르단의 일부였던 동예루살렘을 장악했지만, 1994년 양국 평화협정에 따라 유대인들은 언덕 위 이슬람사원 경내에 들어가도 기도는 할 수 없도록 정해졌다. 금·토요일은 무슬림이 아니면 입장조차 못한다.
북부 하이파 출신의 유대인 남성 이스라엘씨는 한달에 두번씩 통곡의 벽을 찾아 기도한다며 "전세계 모든 이들을 위한 평화의 장소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기자에게 인사했다.
그는 성전산에서 기도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언젠가는 저 위에 새로 유대 성전을 짓게 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라며 "우리가 더 정결해지면 야훼(신)가 성전을 허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곡의 벽
(예루살렘= 김동호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유대인들이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2025.1.19
성전을 되찾겠다는 유대인의 생각은 알하람 알샤리프를 메카, 메디나에 이은 이슬람 3대 성지로 여기고 동예루살렘을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로 생각하는 주민과 충돌한다.
황금빛 돔과 옥색 벽으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바위 사원이 이 언덕의 상징처럼 됐지만, 정말 중시되는 곳은 그 옆에 선 검은색 지붕의 알아크사 사원이다.
이슬람의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가 큰 바위에서 승천해 천상 여행 체험을 한 바로 그 장소에 알아크사 모스크가 세워졌다고 믿는 무슬림은 이곳을 양보할 뜻이 없다.
이날 어린 두 자녀를 품에 안고 부인과 함께 알아크사 사원을 나서던 팔레스타인 주민 마무드(가명)씨는 "이곳에서 기도하면 알라(신)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최근 이스라엘의 극우 정치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이 유대인의 성전산 기도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언급하자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마무드씨는 "유대인은 말만 그렇게 한다"면서도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무슬림)가 모두 들고 일어나 막을 것"이라고 단언하고는 등을 돌렸다.
알아크사 사원
(예루살렘= 김동호 특파원 = 18일(현지시간) 이슬람교도가 성지로 여기는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 2025.1.19
동예루살렘을 미래의 수도로 간주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런 유대인들의 도발에 불만을 품어 왔다. 지난 2000년 당시 아이엘 샤론 총리가 병력 1천명을 끌고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한 일이 5년간 이어진 제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주민의 반이스라엘 저항운동)를 촉발했을 정도다.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이곳을 중심으로 심상찮은 분위기가 흘렀다. 2023년 벤그비르 장관은 "예루살렘의 주인은 우리"라고 말했고, 이스라엘 집권 리쿠르당의 아미트 할레비 의원이 성전산을 쪼개 유대인 구역을 마련하겠다고 주장했다.
그해 10월 7일 하마스는 '알아크사의 홍수'라고 이름붙인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 남부에서 1천200명을 살해하고 251명을 납치해 가자지구 땅굴로 끌고갔다. 성지 수호라는 미명 하에 벌어진 학살극이었고, 이로인해 촉발된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가자전쟁으로 5만명이 죽는 피의 보복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