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정다움 김혜인 기자 = 탑승객 179명의 생명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29일로 한 달이 지났다.
현장에서 수습된 희생자들을 인계받아 장례 절차까지 마친 유가족들은 여전히 슬픔에 허덕이며 추모·기다림의 공간으로 변한 무안국제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사고기에 오른 희생자 저마다의 애달픈 사연이 전해지면서 국가 애도 기간 전국에서는 수십만 명이 추모 물결에 동참했고, 이러한 아픔을 악성 게시글로 헤집은 누리꾼에 대한 경찰 수사가 이어지고 있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의 조사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지만, 베일에 싸여있는 사고·참사 원인, 경위 등을 낱낱이 밝혀낼지도 관심이 모아진다.
참사 6일째, 둔덕에서 인양되는 엔진
(무안= 김도훈 기자 = 3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에 충돌한 제주항공 여객기 엔진 인양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5.1.3
◇ 해외여행 떠난 179명 숨져…참사의 그날 '12·29'
이번 참사는 지난달 29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상공을 비행 중이던 제주항공 여객기 7C221편이 3차례의 메이데이(비상 선언)를 선언하며 시작됐다.
선언 직전 무안공항 관제탑으로부터 조류 활동을 주의하라는 내용의 교신을 받았고, 고도를 높이는 복행 과정을 거쳐 오른쪽으로 선회해 반대 방향의 19활주로로 동체 착륙했다.
당시 착륙기어 장치(랜딩기어)는 모종의 사유로 작동하지 않았는데, 미처 멈추지 못한 사고기는 활주로 너머 방위각 시설물(로컬라이저 둔덕)을 충돌한 뒤 멈춰 서며 불꽃에 휩싸였다.
곧바로 출동한 소방 당국이 불을 끄며 인명 구조 활동을 벌였지만,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현장에서 숨졌고, 승무원 2명만이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둔덕에 부딪힌 충격으로 훼손된 희생자들의 시신, 기체, 유류품 등이 활주로 인근으로 튕겨 나가기도 했는데, 사고 발생 9일 만에 인계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희생자들이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됐다.
동시에 사고 현장에서는 희생자들이 사용했던 전자기기 등 1천200여개의 유류품이 수거됐고, 소유주를 확인하지 못한 800여개의 유류품은 건조·진공 처리 작업을 거쳐 추후 마련될 추모 공간에 안장하기로 했다.
시신을 인도받기 전까지 유가족들이 머물렀던 무안국제공항에는 사고 발생 이후부터 전국의 구호단체·자원봉사자들이 모이면서 유가족·수습 당국 관계자들을 위한 먹거리·생활용품을 지원했다.
공항에 머무르며 이들이 공동체 정신을 실현한 것과는 다르게 추모객 행세를 한 일부는 구호 물품을 무분별하게 가져가는 이른바 얌체 짓거리도 해 국민들의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악성 게시글로 유가족을 조롱한 일부 누리꾼들에 대한 수사도 계속되는데, 경찰은 220여건을 수사했고, 그중 14명을 검거했다.
합동분향소에 놓인 인형
(무안= 김도훈 기자 = 2일 전남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마련된 제주항공 참사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국화와 인형 등이 놓여진 제단에 헌화하고 있다. 2025.1.2
◇ 슬픔에 잠긴 대한민국…전국서 28만명 추모 물결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수습 당국으로부터 시신을 인도받은 지난달 31일부터 순차적으로 장례 절차에 들어갔다.
폭발 사고 등의 여파로 대다수 희생자의 시신이 훼손되면서 수색·인도·장례 등 관련 절차가 마무리되기까지 수일이 걸렸다.
유가족들은 이 기간 공항 대합실에 마련된 임시 텐트에서 밤을 지새우며 시신이 수습돼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연말을 맞아 함께 여행을 떠난 터라 가족 단위 희생자가 많았는데, 이들 모두 합동 장례를 거친 뒤 사고 발생 11일 만에 모두 영면에 들었다.
미처 희생자들을 떠나보내지 못한 유가족들은 장례 절차를 마쳤어도 지난 18일 공항 2층을 찾아 합동 추모제를 지내며 희생자들을 기렸고, 다음 달 15일 49재를 통한 마지막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여객기 사고 중 가장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고인 만큼 전국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추모객의 발길도 이어졌다.
유가족과 추모객이 한자씩 눌러쓴 손 편지 수백여장은 공항 1∼2층을 잇는 계단에 빼곡히 붙었고, 활주로 인근 철조망에도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화·검은 리본이 나붙었다.
사고 당일부터 7일 동안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되기도 했는데, 이 기간 전국 시도 20곳, 시·군·구 80곳 등 모두 100곳에 설치된 합동분향소에 28만명이 넘는 추모객이 방문해 희생자를 위로했다.
합동분향소는 당초 애도 기간에만 운영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유가족 요청을 받아들여 일부 분향소는 연장 운영되고 있다.
전남도는 무안국제공항 합동분향소를 2월 중순까지 운영하기로 했고, 광주시도 5·18 민주광장에서 전일빌딩 245로 옮긴 분향소를 연장 운영 중이다.
방위각시설 살피는 관계자들
(무안= 김도훈 기자 = 5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들이 방위각시설(로컬라이저)을 살피고 있다. 2025.1.5
◇ '사고 4분 전' 기록 중단된 블랙박스…원인 규명될까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항철위는 지난 27일 현재까지의 조사 내용을 담은 예비보고서를 발간해 누리집에 공개했다.
사고 발생 30일 이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등에 예비보고서를 보내야 한다는 국제민간항공협약에 따라 배포했고, 사고 이후 항철위가 처음으로 공표한 첫 보고서다.
A4 용지 5장 분량의 보고서에는 사고기 2개의 엔진에서 겨울철 대표 철새인 가창오리의 깃털·혈흔이 발견됐다는 내용, 비행기록장치(FDR)·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 등 블랙박스 기록이 둔덕 충돌 4분 전부터 남아있지 않다는 조사 결과가 담겼다.
특히 무안국제공항 활주로부터 2㎞ 떨어진 상공에서 사고기의 블랙박스 기록이 멈췄는데, 어떠한 사유로 기록이 중단됐는지도 밝혀내야 할 새로운 쟁점이 됐다.
항철위는 분해한 엔진을 검사하고, 남아있는 블랙박스 기록, 둔덕 등을 면밀하게 조사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낼 계획이지만,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유추할 기장·부기장 간 대화 내용 등이 없어 조사는 장기화할 수도 있다.
유가족들은 이제 막 조사가 시작됐고, 명확하게 사고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만큼 근거 없는 추측이나 단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박한신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가족협의회 대표는 "몇 마리의 오리가 언제, 어떻게 들어가게 됐는지 밝혀지지 않았다"며 "일부 조사 결과로 사고 원인을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 "100%에 해당하는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유가족들은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중이다"며 "항철위에 철저한 사고 조사를 요구하거나 결과가 제대로 나오는지 주시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