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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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모 기자 = 미성년자가 사고로 심하게 다치거나 숨졌을 경우 받게 될 손해배상금이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을까.
남자는 병역 복무 기간 마땅한 수입이 없기 때문에 장래에 받게 될 소득을 추정할 때 소득 발생 추정 기간에서 이 복무기간이 제외돼 생긴 일이었다.
이는 그동안의 관례로 2000년 4월 대법원 판례가 이를 확정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서울고법이 이를 뒤집는 판단을 내려 향후 대법원의 입장 변화가 주목된다.
◇ 장래 예상 소득 계산 시 군 복무 기간은 제외
손해배상금은 통상 적극적 손해와 소극적 손해를 따져 산정한다. 적극적 손해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산이 감소하거나 소멸한 경우를, 소극적 손해는 장래에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상실한 경우를 말한다.
이중 소극적 손해를 일실수입이라고도 한다. 즉, 일실수입이란 어떤 사고가 인한 피해자가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장래의 소득을 뜻한다.
대법원은 2000년 4월 교통사고 사망자의 일실수입을 산정할 때 피해자가 아직 병역의무를 마치지 않는 남자인 경우 "일실수입 상당 손해를 산정함에 있어 현역 복무가 면제된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병역 복무기간이 가동 기간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군 복무(C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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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 기간은 사고가 없었더라면 피해자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기간을 뜻한다. 가동 기간은 통상 성년에서 가동연한(가동 기간의 종료 시점)까지로 본다. 이 가동연한이 예전엔 60세였는데, 2019년 2월 대법원이 65세로 상향 조정했다. 따라서 미성년자의 경우 가동 기간은 만 19∼65세가 된다.
2000년 4월 대법원판결의 취지는 병역 미필 남자는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기간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없으므로 병역법에 따른 복무기간을 가동 기간 산정에서 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실수입은 말 그대로 장래에 거둬들일 것으로 예상되는 수입이므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복무기간이 가동 기간 산정에서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단, 여자는 병역 의무가 없으므로 동일한 사고를 당했을 경우 소극적 손해 산정액이 여자가 남자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런 기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손해배상 산정에서도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 그동안 '국가배상법' 시행령에서 가동 기간에 해당하는 '취업 가능 기간'을 산정할 때 남성 미성년자는 여자보다 3년 적게 계산했다.
◇ 법 개정…군 복무 기간→취업 가능 기간 인정
그러다가 변화의 조짐이 불기 시작했다.
2019년 4월 법무부 예규인 '국가 및 행협배상 업무처리 지침'이 개정돼 "취업 가능 기간에서 병역법상 군 복무 기간을 제외하는 경우, 군 복무 기간 중 받을 수 있는 군인의 봉급을 반영해 배상액을 산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이에 따라 군 복무 기간 소득이 '0'으로 계산됐던 것이 군인 봉급만큼은 인정받게 됐다.
당시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과거와 달리 군인의 봉급은 꾸준히 인상돼 2022년에는 최저임금의 50% 수준에 이르게 됨에도 이를 배상액에서 일률적으로 제외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고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2023년엔 아예 법령 자체가 개정됐다. 취업 가능 기간을 규정한 '국가배상법' 시행령 제2조가 "피해자가 군 복무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군 복무 기간을 취업 가능 기간에 전부 산입"하도록 바뀐 것이다.
2025년 첫 병역판정검사
(인천= 임순석 기자 = 13일 오전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병무청에서 열린 2025년도 첫 병역(입영)판정검사에서 검사 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2025.1.13
법제처는 당시 개정 이유로 '헌법' 제11조 제1항에서 규정한 평등의 원칙과 제39조 제2항에서 규정한 병역의무의 의행에 따른 불이익 처우 금지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국가배상 기준의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헌법' 제1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제39조 제2항은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서울고법, 기존 판례 뒤집어…대법원 입장 변화 주목
최근엔 이런 흐름이 민사상 손해배상으로까지 확산했다.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이 카페 수영장에서 놀다가 배수구에 손이 끼어 숨진 남아의 일실수입 손해를 산정할 때 병역 복무 기간을 가동 기간에 산입하는 것이 타당하고 판결했다. 병역 복무 기간을 제외했던 1심 판결뿐 아니라 기존 대법원 판례를 거스르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서울고법은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 '헌법' 제11조 제1항과 제39조 제2항을 언급하며 기존의 손해액 산정 방식이 병역의무가 있는 사람에게 군 복무로 인한 불이익한 처우를 야기하면서 동시에 병역의무가 없는 사람과 합리적 이유가 없는 차별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병사 월급 인상
김인철 기자 = 1일 서울역에서 군 장병들이 이동하고 있다. 2024.1.1
둘째, 군 복무 기간 전부가 취업 가능 기간에 산입하도록 바뀐 국가배상법의 개정 취지가 일반적인 손해배상책임, 즉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의 범위를 정하는 데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 헌법 원칙에 부합한다고 봤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합당한 예우와 보상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에 따라 병사들의 봉급을 최저임금에 가까운 수준으로 순차적으로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꼽았다.
이에 따라 징집병의 봉급이 병장 기준으로 과거 대법원판결이 있었던 2000년 1만3천700원에서 2024년에 125만원으로 90배 이상 급증했다.
이런 군 봉급이 일실수입 계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사고가 군 복무 이전 또는 이후에 발생했다는 우연적인 사정에 따라 실제 수입과 기대 수입이 달라지는 부당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서울고법은 판시했다.
서울고법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병역 복무 기간(18개월) 받을 수 있는 총보수는 2024년 기준 1천708만원이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하급심의 판결로 향후 대법원의 입장 변화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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